제약사.정부 '팔짱'..사망 이어 자궁적출 사례 발생

산부인과에서 무허가 분만유도제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해당 제약사와 보건당국은 몇 년째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 임신부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의료인과 제약회사, 보건당국이 서로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해 환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무허가 분만유도제 사용후 사망, 자궁적출 = 문제의 약물은 '싸이토텍'(성분명: 미소프로스톨) 또는 같은 성분의 소화기관용 약물들이다.

16일 식품의약품안전청과 법무법인씨에스 등에 따르면 30대 여성 김모씨(부산시 연지동)는 지난 2007년 분만중 유도분만 목적으로 싸이토텍을 투여받은 후 과다출혈 부작용이 발생해 결국 자궁을 적출하게 됐다.

또 같은 해 법원(청주지방법원)은 이 성분을 유도분만제로 사용해 산모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의사에게 60% 책임을 물어 1억3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사망한 사례는 미소프로스톨 성분이 원인으로 인정됐으며 자궁적출한 산모의 경우 약물이 원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싸이토텍은 원래 식약청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구역질과 구토증상 등 소화기관용 약물로 승인을 받았으며 FDA 분류상 임신부에게 절대 금지되는 '엑스(X)등급'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산부인과에서는 값비싼 분만유도제 대신 이 약이 분만유도와 자궁출혈 방지 목적으로 빈번하게 쓰이는 실정이다.

◇제약회사, 산부인과에 팔고도 '모르쇠' = 산부인과에서 미소프로스톨 성분이 분만유도제로 쓰이는 것은 정식 분만유도제로 허가된 약에 비해 가격이 훨씬 싸고 보관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또 산부인과 교과서에서도 이 약의 분만유도효과 및 자궁출혈 억제효과를 인정하고 있다는 게 산부인과전문의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싸이토텍은 정식으로 분만유도제로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용법.용량도 정해져 있지 않아 과다투여될 우려가 높다.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논문에 따르면 이 약은 소화기 약물로 쓰일 때 용량의 4분의 1 이하에서도 분만유도와 자궁출혈 작용이 나타나며 농도가 높아지면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도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제약회사는 이 약을 산부인과에 판매하면서도 분만유도제 효능을 표시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면 분만유도제로 사용한 의사의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한국화이자제약 관계자는 "회사는 싸이토텍에 대해 분만유도효과나 자궁출혈 억제효과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제품설명서에 임신부에게 절대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싸이토텍은 전문의약품인 만큼 의사의 판단에 따라 사용되는 것이며 그 책임도 의사에게 있다"고 덧붙였다.

◇사고나면 환자만 피해 = 제약사들은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 약을 분만유도제로 정식 허가를 받지 않고 있으며 의사들의 '무허가 투여'를 조장하고 있다는 게 산부인과 의료진의 의견이다.

산부인과전문의 김모(40.당산동)씨는 "제약업체가 이 성분을 분만유도제로 쓸 수 있도록 저용량 제품으로 개발해 보건당국의 승인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수익성이 낮은 탓인지 산부인과에 약을 팔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부작용 우려가 커서 제약사 입장에서 분만유도제로 개발 및 상품화를 회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약품 부작용 관리에 책임이 있는 식약청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싸이토텍의 부작용 논란이 제기된 지난 2007년 이후에도 의료진들에게 사용상 주의를 당부하지 않은 것.
이에 따라 임신부들은 정식으로 허가 받은 분만유도제가 있는지도 모른 채 제대로된 설명도 듣지 않고 무허가 약물을 투여받고 있다.

싸이토텍 투여 후 자궁을 적출한 김씨의 소송대리를 맡은 이인재 변호사(법무법인 씨에스)는 "건강하던 임신부가 무허가 분만유도제를 투여받은 후 자궁을 잃었는데 의료인도 제약회사도, 정부도 잘못이 없다고 한다"며 "병원으로부터 받게 될 배상금과는 별개로 임신부에 금지된 약물을 투여하도록 방치한 정부를 상대로 최근 소송을 제기했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tr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