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님이야 그런 대접을 받아도 될 만큼 훌륭한 분이셨지만 우리나라가 가톨릭 국가도 아닌데 천주교가 이렇게까지 과분한 대접을 받아도 되는가 싶었습니다. 천주교가 국민들을 위해 더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회초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혹시 다른 종교를 언짢게 했거나 폐를 끼쳤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하고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6일 서울대교구청 집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간담회는 지난달 16일 선종(善終)한 김 추기경의 장례 과정에서 보여준 국민과 언론의 관심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한 자리였다.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가 로마 교황청에 전해져 교황님 이름으로 장례를 치르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교황님 이름으로 장례를 치르는 데 대해 법적인 용어는 없지만 교황 특사를 보내는 것보다는 격이 높은 것입니다. 교황님 이름으로 치르는 장례는 교황님이 직접 오신 것처럼 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입관 · 본미사 · 고별식 · 하관식 등 장례의 여러 절차를 다른 주교님들에게 맡기지 못하고 저 혼자 다 했습니다. 어찌 보면 '독무대'라고 하겠지만 제 마음대로 (다른 분에게)맡겨 드릴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

정 추기경은 "김 추기경께서는 은퇴한 후 10년 동안 제가 부족한데도 '상왕(上王)' 노릇은 안 하시고 저를 굉장히 존중해주셨다"며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제가 찾아가서 '요새 이런 일이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면 '다 알아서 잘 하시지' 하면서도 뭐 한마디 힌트를 주시는 게 저한테는 큰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런 '큰형님'이 막상 떠나시니 매우 허전하고,이젠 누구한테 훈수를 받을까 싶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간담회가 끝날 무렵 기자들에게 김 추기경이 그린 자화상 '바보야'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귀를 담은 스티커를 선물했다. 언론사 대표들에겐 추기경 명의로 '사랑과 나눔의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더욱 전파되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의 감사편지를 전했다.

"김 추기경께선 몸이 불편했던 지난 1~2년간 '바보야'를 깊이 묵상하셨던 것 같아요. 남들은 '찬란한 황혼'이라고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이 분의 마지막 몇 년은 마지막 남은 빛을 환하게 비추는 '장렬하고 장엄한 낙조'였습니다. 그 마지막 깨달음이 '바보야'였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나는 바보야'라고 하시는 걸 보고 '이 분이 한 경지에 오르셨구나'하고 느꼈지요. "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