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이 무덤 속으로 내려가는 순간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추기경 광산 김공 수환 스테파노 지구'라고 적힌 명정(銘旌 · 고인의 관직 성씨 등을 흰색 글씨로 기록한 붉은 천)이 널 위에 펼쳐졌다. 유족들은 3~4차례 성수를 뿌리며 명복을 빌었다. 장봉승 주교,강우일 주교 등과 유족들이 흙을 한 삽 한 삽 퍼올려 관을 덮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기도를 올리는 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20일 오후 1시30분 경기도 용인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 내 성직자 묘역.김수환 추기경의 하관 예절이 정진석 추기경,윤공희 대주교 등 성직자와 유족,사제단,일반 신자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무덤 축복,기도,향 봉헌,성수 뿌리기,독서,청원 기도,유가족을 위한 기도,관 덮기 순으로 하관 예절이 진행되는 동안 참석자들은 쉬지 않고 기도했다. 이들의 손에는 관에 들어간 김 추기경이 그렇듯 묵주가 들려 있었다. 큰어른의 마지막 가는 길 30여분 동안 사람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간간이 흐느낌이 흘러 나왔다. 일부 나이 든 신자들은 오랜 기다림에 몸이 불편해졌는지 신문지를 깔고 주저앉기도 했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같은 날 서울 명동성당에는 새벽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장례 미사의 시작 시간은 오전 10시였으나 추모객들은 추위도 개의치 않고 일찌감치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여성 신자들의 머리 위에 얹힌 미사포가 싸늘한 바람에 흔들렸다가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김 추기경과 좀 더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에 관이 안치된 명동성당 대성전 옆에 작은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장례 미사가 시작되기 전 3~4시간 동안 추위를 견디기도 했다.

이날 명동성당에 운집한 추모객은 1만여명.미사가 시작된 후에도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어 명동성당 대성전 부근과 가톨릭회관 앞 광장은 꽉 찼고 나중에는 통행도 힘들 정도였다.

장례 미사가 시작되자 추모객들은 차분하고 경건하게 추기경의 명복을 빌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치는 모습도 보였다. 교황 특사인 정진석 추기경은 강론에서 "김 추기경님은 성자처럼 살았던 촛불과 같은 존재로,사랑과 나눔을 우리에게 중요한 유산으로 남겨 주어 이 슬픈 상황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다"라고 애도했다.

작별 예식에서 정 추기경이 교황 추도사를 읽은 데 이어 한승수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별사를 대독했다.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교황청 대사는 "'나는 그저 당신 양떼에게 비천한 종일 뿐'이라는 말씀과 달리 당신에게 맡겨진 양떼에게는 충실하고도 선견지명을 갖춘 훌륭한 목자셨다"고 추모했다. 한홍순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은 조사를 읽어 내리면서 자주 목이 메었고 대성전 안 각계 인사들과 신자들,성직자 등 800여명은 숙연하게 고인을 기렸다. 강우일 주교는 인상 깊은 말로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추기경께서는 투병과 죽음을 통해 경제 위기와 사회 불안으로 깜깜하고 싸늘하게 식어 버린 국민 마음을 덥히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혜화동 할아버지가 아니라 한국의 할아버지가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분명 이렇게 말하실 것입니다. '어서 오너라.내 사랑하는 바보야.그만하면 다 이뤘다. '"

대성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도 바깥에서 추위에 떨며 설치된 화면으로 생중계되는 미사를 지켜봤다. 최연옥씨(55 · 세례명 율리아)는 "추기경님의 위대한 삶을 생각하면 가톨릭 신자라는 게 자랑스러워진다"면서 "추기경님은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추모객들도 모여들었다. 지난해 9월 태어난 어린 아들을 안고 남편과 함께 명동성당에 온 전은미씨(30)는 "추기경님께 본받고 싶은 점이 많은데 마음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1년6개월 동안 명동에서 노방전도를 했다는 조용철 목사(46)도 "개신교와 가톨릭은 다른 종교이지만,추기경은 아시아 가톨릭계의 최고 어른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위해 일하시고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셨으며 청빈하게 사시고 모범을 보인 점을 존경한다"고 했다.

1시간40분가량 진행된 장례 미사가 끝나고 김 추기경의 관이 대성전 밖으로 빠져 나오자 추모객들은 경건하게 고개를 숙이거나,기도를 하거나,성호를 그으며 이별을 고했다. "추기경님,사랑합니다"라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사목 표어인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를 한평생 실천하며 살다 간 김 추기경에게 바치는 사랑과 존경이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