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루주국제재판 내일 개정…난제 많아 재판 험난할듯

"역사의 심판이 시작됐다."

지난 1997년 이후 캄보디아 역사연구소를 운영하며 크메르루주의 학정에 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해온 욕 창 소장은 17일 마침내 문을 여는 크메르루주 국제재판의 시작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200만명에 이르는 동족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들은 이를 어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라며 "이번 국제재판의 의미는 피의자 처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다시는 그와 같은 만행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육적 효과를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자 농민의 유토피아 건설'을 내세우는 마오이스트 공산주의자들인 크메르루주는 1975년 4월17일 '미국의 앞잡이'로 비난받아온 론놀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중들의 환영을 받으며 프놈펜에 입성했다.

그러나 그들은 정권을 탈취하자마자 모든 지식인과 화이트칼라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유토피아 건설의 이름 아래 그들을 집단 처단했다.

1979년 훈센이 이끄는 반군과 그를 지원하는 베트남군이 그들을 몰아낼 때까지 크메르루주의 우두머리 폴 포트는 200만명에 육박하는 동포들을 처형하거나 굶주림으로 사망케 했다.

악명높은 투올슬렝 감옥은 물론 프놈펜 인근 여기저기에서는 한꺼번에 파묻힌 수천 구의 유골이 발굴되는 등 '킬링필드'의 참혹한 역사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그들은 모든 노동자와 농민들이 주역이 된다는 이름 아래 안경을 쓴 사람 심지어 손이 흰 사람들까지 무조건 잡아다가 처형하고 고문했다.

17일 시작되는 재판은 이 '킬링필드'를 이끈 주역들에 대한 심판이다.

지난 2003년 유엔과 캄보디아의 합의에 따라 2006년 7월 구성된 국제재판정은 2년6개월여동안 5명의 피의자들을 체포해 수감했다.

그 중 가장 먼저 심판대에 오른 피의자는 본 이름은 카잉 구엑 에아브(66)이지만 통상 '더치'로 불리는 투올슬렝 교도소의 교도소장이다.

그는 1만6천여명의 수감자들 가운데 14명만 살아나올 정도로 고문과 처형을 일삼아 킬링필드의 주역을 담당했다.

그는 최근 기독교로 개종해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지만 종신형을 면치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 외 크메르루주의 2인자로 군림한 누온 체아와 국가주석 케에우 삼판, 외무장관 렝 사리와 그 부인도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폭정의 주역인 폴 포트는 지난 1998년 훈센에 저항하다 사망했고 그의 하수인이었던 타 목도 지난 2006년 감옥에서 숨졌다.

사실상 주역은 사망하고 조역만 남은 셈이다.

이들 조역에 대한 재판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불과 5명만을 선정한 국제재판은 이미 당초 예상했던 3년의 기한이 다 돼 연장이 불가피해졌고 유엔과 캄보디아에서 나온 판사들간 이견도 만만치 않다.

유엔 출신 판사들은 이들 5명 외에 추가로 6명의 조사를 시작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캄보디아 출신 판사들은 반대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뒤를 받치고 있는 훈센 총리의 재판에 대한 미온적인 자세다.

자신도 크메르루주의 장교로 프놈펜 진입에 참가해 한쪽 눈을 잃었던 훈센은 나중에 베트남군을 앞세워 이들을 타도하긴 했지만 여당 내의 간부들 상당수가 크메르루주 출신들인데다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우려하고 있다.

재판정 내의 각종 뇌물 소동과 불협화음도 재판에 장애가 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국제재판정이 본질은 건드리지도 못한 채 시간만 끌고 결국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더치를 제외한 대부분의 피의자들이 70대의 고령인데다 건강이 나쁜 상태여서 재판이 제대로 진행될지도 의문이다.

(하노이연합뉴스) 권쾌현 특파원 khk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