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접었다고 선언은 했지만

지난주 미국 재무부가 금융사 부실자산을 인수하는 방안 등을 포함한 금융안정대책을 발표했습니다.그런데도 부실은행 국유화를 과감히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단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재무부는 은행을 국유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최대 1조달러 규모의 민관 투자펀드로 은행들의 부실자산을 사들이고,재무건전성을 평가해 은행에 자본을 지원해주는 선에서 그치겠다는 계획입니다.은행 자율은 최대한 보장해주겠다는 것이지요.

오바마 대통령은 “한때 부실은행을 효과적으로 국유화해야 할지 여부를 검토했지만 국유화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결론냈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그는 “은행들의 숫자와 경제규모,민간 자본이 핵심적인 투자수요를 충족시켜 온 미국의 강력한 전통을 감안하면 정부가 국유화 시스템을 관리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국유화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은 미국 은행들이 중병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뉴욕타임스는 일부 대형 은행들의 부실이 심각해 ‘형장으로 향하는 사형수’와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이들 은행이 갖고 있는 자산을 현재 시장가격으로 평가하면 대형 은행중 자본잠식에 빠진 곳이 나올 수 있으며,사실상 지급불능 상태라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해부터 미국 은행들이 부실 대출과 자산가치 하락으로 손실처리한 규모는 1조달러대에 달합니다.국제통화기금(IMF)과 골드만삭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은행 손실이 2∼3조달러 더 발생할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1조2000억달러에 달합니다.여기에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신용카드 대출,고위험 채권 등의 규모도 7조달러대에 달해 은행권의 잠재부실은 계속 늘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국유화 겁낼 이유 없어

전문가들은 은행들의 이런 중병을 시급히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부실자산 부담을 덜어주지 않으면 기업과 가계에 돈이 돌지 않는 신용위기가 지속돼 경제회복은 지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오바마 정부는 의회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7870억달러의 경기부양책을 승인받았습니다.부양책이 신용위기 해소와 맞물리지 않는 한 부양효과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국유화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대표적인 전문가는 미국의 금융위기를 일찌감치 예견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입니다.루비니 교수는 몇가지 단계를 거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부실은행을 국유화한 뒤 우량자산과 부실자산을 구분,이중 일부 부실자산은 시장가격대로 매겨 민간 투자자들에게 팔고,우량자산은 새로 상장하거나 전략적인 투자가들에게 매각하는 방향으로 다시 민영화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그래도 남는 부실자산은 부실자산처리 기구를 만들어 처리하면 된다는 구상입니다.

루비니 교수는 1992년 스웨덴이 이같은 방식으로 부실은행을 처리해 성공한 사례를 제시했습니다.정부가 부실은행을 인수하고 부실자산을 대청소한 다음,자본을 확충해 우량화시키면 되는 것이지요.사실 은행 국유화의 원조는 미국입니다.미국 정부는 1930년대 대공황 때 부도난 은행 6000곳의 지분을 인수한 적 있습니다.시사주간지인 뉴스위크는 그런 미국이 국유화를 겁낼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재무부가 향후 은행들의 부실을 정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국유화 압력은 한층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