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세 단정은 일러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가?'
금융위기로 촉발된 극심한 불안과 공포가 휩쓸던 전세계 금융시장에 최근 들어 미미하게나마 안정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전세계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리보(런던은행간 금리)가 하향 안정세를 지속하고 있고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인 회사채 발행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주가도 불안한 등락 속에서도 현 수준대를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금융시장뿐 아니라 실물경제 쪽에서도 미 공급관리협회(ISM)의 1월 제조업지수가 소폭 반등한 것을 비롯해 유럽과 중국의 유사 지수도 상승세를 보였고, 미국의 1월 소매판매도 예상을 깨고 증가세를 나타내 급락하던 경기가 바닥에 달한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대규모 감원이 지속되면서 실업률 급등세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가계소비 등 여타 경제여건의 암울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경계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 금융시장 회복기미
3개월 만기 달러 리보는 지난 11일 미 재무부가 발표한 금융안정계획에 대한 실망감으로 소폭 반등해 1.23%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작년 가을 리먼브러더스의 도산 이후 기록했던 최고치 4.82%와 비교하면 크게 떨어진 수준이다.

우량 등급의 회사채 발행도 늘였고 단기 기업어음(CP)의 금리도 낮아져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재개됐음을 시사했다.

리서치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 들어 전 세계적으로 정부보증을 받지 않은 투자 등급의 회사채는 2천644억달러 어치가 발행됐다.

이는 작년 4·4분기에 한 달 평균 829억달러 규모가 발행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늘어난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 기업 유니레버가 15억달러 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했고 시스코 시스템즈도 40억달러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들어갔다.

또 미국 분유업체인 미드존슨은 뉴욕증시에서 기업공개(IPO)를 통해 7억2천만달러의 자금을 조달, 자금시장 경색으로 중단됐던 IPO가 4개월 반 만에 재개됐다.

주식시장의 주가는 단기 등락을 거듭하는 가운데서도 작년 가을과 같은 지속적인 급락을 피하면서 바닥을 다지는 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무디스이코노미닷컴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금융시스템에서는 일부 안정의 신호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 실물·부동산도 바닥(?)
미국 경제위기의 진앙인 부동산 시장은 정부가 모기지 원리금 연체와 주택 압류를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으면서 바닥을 다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택 신축허가 건수나 주택거래 가격은 사상 최악의 기록을 매달 경신하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지만, 주택 압류 건수가 감소세로 돌아서고 거래도 늘어나는 등 일부 지표에서는 개선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 대부업체들이 조만간 발표될 정부의 부동산관련 대책을 기다리면서 주택 압류를 늦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클로저닷컴에 따르면 지난달 주택 압류건수는 7만2천694건으로 작년 12월보다 26%나 감소했다.

가격이 급락하면서 저가 매수를 노린 거래도 증가하고 있다.

작년 9월 신규 단독주택의 판매는 전달보다 2.7% 늘어난 46만4천건으로 집계돼 전문가들의 예상치를 웃돌았다.

제조업경기를 나타내는 지표인 미 공급관리협회(ISM)의 제조업지수는 지난달 35.6으로 전달 32.9보다 상승했다.

기준치인 50을 밑돌았기 때문에 위축세는 여전하지만, 그 속도는 둔화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로를 사용하는 16개국 유로존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34.4를 기록해 작년 12월의 33.9보다 0.5포인트 상승했고 중국의 1월 PMI도 42.2로 지난해 12월의 41.2에 비해 소폭 올랐다.

급락세를 이어가던 미국 소매판매 실적도 1월에는 전달대비 1.0% 증가하면서 7개월 만에 처음으로 상승세로 돌아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 '회복세' 단정은 시기상조
이런 호조 징후에도 불구하고 아직 전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는 것으로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지난 10일 뉴욕증시의 주가가 폭락한 데 이어 12일에도 장중 200포인트 가까이 하락하는 등 증시의 불안감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데다 일부 지표들도 각국 정부의 금융부양책 등에 힘입은 인위적인 호전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소매업체의 판매실적 반등은 유통업체들이 '폭탄세일'을 지속한데 따른 것으로 업체의 수익성 개선엔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최근 발표된 주요 상장 업체들의 작년 4분기 실적에서는 사상 최악의 적자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WSJ는 지난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기업의 수익이 전년대비 31.7% 감소, 20년만에 최대폭으로 감소하면서 5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치솟는 실업률이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경기 회복 전망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매달 60만명에 육박하는 실업자가 발생하면서 고용시장이 사상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경기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뉴욕연합뉴스) 김지훈 특파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