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철거민연합회(이하 전철연) 회원들과 경찰 간 대치 상황이 참사를 불렀다. 일차적으로는 농성자들이 화염병 · 시너 · 염산 · LPG가스통 등 극도의 위험물질을 대거 비치해놓고 '테러'에 가까운 과격시위를 벌인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경찰이 인화물질로 인한 화재 및 폭발 가능성이 충분히 예측되는데도 서둘러 진압에 나서는 바람에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시간대별 상황은

서울지방경찰청 용산경찰서 등에 따르면 전철연 회원 등이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을 점거한 것은 19일 오전 5시30분.이들은 옥상에 컨테이너 3단으로 된 망루를 설치하고 미리 준비한 화염병 150개,염산병 40여개,벽돌 1000여개,골프공 및 구슬 700개 등을 경찰과 시민들에게 무차별 투척했다. 경찰은 병력 300명을 투입한 뒤 농성자들에게 수십 차례 경고방송을 보내고 설득을 시도했으나 이들은 불응했다. 전철연 측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20일 오전 1시께는 농성자들이 던진 화염병으로 주변 빌딩에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남일당 인근에서 순대국집을 운영하고 있는 서모씨는 "새벽 2시께까지 농성자들이 화염병,신나 등을 투척했고 새총을 이용해 골프공 등을 쐈다"고 상황을 전했다.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은 19일 오후 7시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용산경찰서장의 특공대 투입 요청을 승인했다. 김수정 서울경찰청 차장은 20일 "화염병이 난무하고 마치 테러가 일어난 상황과 같아 경찰력을 조기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20일 새벽 6시12분께 계속 저항하는 농성자들에게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30여분 뒤 경찰 특공대원들이 컨테이너 박스에 타고 10t짜리 기중기를 통해 건물 옥상에 진입했다. 이때 바닥까지 흥건했던 시너에 화염병 불이 옮겨 붙어 3층짜리 망루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이후 망루가 무너져 내리면서 참사로 이어졌다.


◆사망자 왜 많았나

경찰은 경찰 1명,농성자 5명 등의 사망자가 발생한 직접적인 원인은 폭력 시위 과정에서 농성자들이 던진 위험물질 때문이라고 밝혔다. 시너 등을 곳곳에 뿌리고 유리구슬과 벽돌 등을 새총을 이용해 경찰 및 행인들을 향해 발사하는 등 불법행위를 일삼아 강제진압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특히 농성자들이 경찰의 진입을 막기 위해 비좁은 망루 안으로 몰려든 데다 이곳에 시너와 화염병 등 인화물질이 가득 쌓여 있던 것도 피해를 키운 결정적 원인이 됐다. 농성자들이 준비한 인화물질에 불이 붙으면서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졌기 때문이다. 화재 발생과 동시에 검은 연기가 현장을 뒤덮고 불이 옥상 전체로 번진 것은 이 같은 상황을 방증해 준다.

경찰의 서투른 대응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농성자들이 격렬히 저항하고 있고 시너 등 인화물질로 도배된 시위현장을 적절히 감안하지 않고 조기 진압에 나섰기 때문에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오전 긴급히 철거민 사망사건 특별수사본부를 꾸렸다.

한편 이날 사망한 농성자 5명 중 3명은 상가 세입자인 이모씨(70)와 양모씨(55),그리고 또 다른 이모씨(50) 인 것으로 확인됐다.

박민제/김주완/김효정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