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미네르바의 부엉이
미네르바는 자기의 탄생이 그러하므로 멍청하여 트이지 않은 세상의 모든 머리를 도끼로 깨고 그 속에 지혜를 불어넣어주는 여신이 된 것이다. 그 여신은 항상 부엉이 한 마리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부엉이에게서 지혜를 얻곤 한다.
내 뒷산에 사는 부엉이는 늘 나의 반대편에 서 있곤 한다. 그 부엉이는 옹졸한 나의 시각을 꾸짖는다. 가령 내가 나와 자식들하고만 잘먹고 잘살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할 때,나의 명예만 생각할 때 내 막막한 미망(迷妄)을 꾸짖는다.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판단을 할 때 내 눈앞의 칙칙한 안개를 꾸짖는다. 그가 꾸짖을 때마다 나는 그렇다 하고 수긍하면서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을 바라보려고 그 부엉이처럼 눈을 부릅뜬다.
미국 새 대통령 오바마도 어쩌면 그러한 부엉이 한 마리를 옆에 끼고 살아오지 않았을까. 오바마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자가 있을 때 첨예하게 대립하려 하지 않고,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의 처지가 되어 심사숙고한 다음 "네 말도 옳다"하며 동조하고 나서 "그러나 그것보다는 내 주장이 현실적으로나 이상적으로나 한 발 앞서는 것 아닌가"하고 설득함으로써 마침내 그 반대자로 하여금 그의 편이 되게 하는 삶의 지혜를 가졌다.
그러한 삶의 방법이 기적을 가져왔다. 나는 생각한다. 그 기적을 가져온 것은 오바마가 아니고 그가 옆구리에 늘 끼고 다니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인 것이다.
혹한이 닥치면서부터 뒷산 부엉이는 울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부엉이가 나의 뒷산을 버리고 어디론가 이사를 간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울지 않고 있을 뿐,그는 늘 내 내면에 와서 운다. 올해 늦가을이면 자기의 삶이 건재하고 있음을 '부엉부엉'하고 보여줄 것이다.
내가 소설을 쓸 때,시 한 편을 쓰고 났을 때,칼럼 한 편을 쓸 때면 내 뒷산의 부엉이가 참견을 한다. 그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이 되면 날듯이 글을 다 마무리 지어 발송할 무렵에 눈을 부릅뜨고 참견을 한다. 그 참견으로 인해 나는 칼럼을 다시 냉철한 마음으로 고쳐 쓰곤 한다.
부엉이를 옆에 끼고 다녔다는 미네르바는 오만한 자의 고정관념을 깨는 지혜의 여신이다. 고정관념이란 얼마나 무서운 우리들의 칙칙한 어둠이고 장벽인가. 나의 사랑하는 그 부엉이를 이명박 정부의 지붕 위로 날려 보내주고 싶다.
우리 사회,우리 역사,우리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주체가 되는 자들은 모름지기 그런 미네르바의 부엉이 한 마리쯤 옆구리에 끼고 있어야 한다. 돌아가지 않는,꽉 막혀 있는 머리를 깨고 거기에 지혜를 넣어주는 눈 부릅뜬 미네르바 여신의 부엉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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