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EU 동반자로서 신뢰 상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불신의 골이 깊은 것 못잖게 이제는 우리도 두 나라를 믿을 수 없게 됐다."

감시단 활동을 보장하는 의정서 합의에도 불구하고 유럽행(行) 천연가스 공급이 재개되지 못하는 이유를 놓고 분쟁 당사자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상호 비방전을 계속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르는 양상이다.

EU 집행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조속한 사태 해결의 가능성을 묻는 말에 두 나라의 신뢰도 추락을 강조했다.

EU는 집행위와 이사회 명의의 성명, 기자회견 등을 통해 양국이 지난 12일 브뤼셀에서 대면협상을 통해 체결한 의정서를 준수해 유럽행 천연가스 공급을 즉각 재개할 것을 촉구해왔다.

14일에는 급기야 주제 마누엘 바로수 집행위원장이 유럽의회에 출석해 "더는 이 사태를 용인할 수 없다.

피해를 보는 역내 기업들로 하여금 가즈프롬과 나트토가즈를 제소토록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지난 1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내 소비용 가스공급을 중단한 이후, 그리고 7일 유럽행 가스공급을 전면 중단한 이후 EU에서 나온 가장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그만큼 가스공급 중단으로 인한 회원국의 피해가 심각할 뿐 아니라 의정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책임을 다하지 않고 상호 비방전만 펼치는 두 나라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전략적으로 중요한 '제3국'이라는 점에서 EU의 고민은 더 깊다.

러시아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것처럼 EU의 핵심적인 에너지 공급원인 데다 국경을 접한 '슈퍼파워'로서 EU와 동반자적 관계를 구축한 국가다.

작년 8월 그루지야 사태에서도 EU는 러시아에 대해 강력하고도 실효성이 제재를 가하지 못했고 단지 동반자 협상 등 대화를 중단하는 데 그쳤으며 그조차도 2개월여 만에 재개함으로써 '채찍'의 한계를 드러냈었다.

회원국 가입 후보인 우크라이나도 EU에는 '계륵'과도 같은 국가로 옛 동유럽 공산국가 가운데 국방력 등에서 러시아에 맞서기에 가장 적합한 파트너지만 '오렌지 혁명' 이후에 계속되는 정정 불안 및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EU는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꾸준한 '구애'에도 불구하고 선뜻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스대란은 EU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믿음에 의심을 깊게 했다.

EU 관계자는 "양국이 EU를 동반자로 인식한다면 의정서 합의대로 가스공급을 재개해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브뤼셀연합뉴스) 김영묵 특파원 econ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