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리티 9개국 설문조사 … 노후자금 수요는 가장 많아

한국 직장인들의 은퇴에 대한 걱정은 큰 반면 은퇴준비나 정보수집 활동은 매우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상황을 감안할 때 직장인과 금융회사 모두 은퇴 제도에 대한 준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4일 피델리티가 한국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등 유럽 8개국 20대 이상 각 500여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은퇴준비 상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은퇴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됐다'고 응답한 비율이 32%로 가장 높았다. 이는 조사 대상자의 6%만 '전혀 준비가 안 됐다'고 응답한 스웨덴이나 스위스(7%),독일 · 네덜란드(9%) 등 비교적 사회보장제도가 잘 된 국가는 물론 포르투갈(26%),이탈리아(31%)보다 높은 수치다.

또 '은퇴 준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국내 직장인은 75%에 달해 독일(86%),오스트리아(78%)에 이어 상위권에 올랐다. 네덜란드와 스웨덴은 40% 정도만 은퇴 준비가 걱정된다고 답했다.

반면 한국 직장인들은 은퇴 후 필요한 자금은 가장 높은 수준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필요한 은퇴자금을 "현재 수입 수준"이라 응답한 비율은 한국이 75%에 달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25%만 '현재 수준'이라 답했으며,스웨덴(31%) 포르투갈(41%) 독일(49%)은 절반 이하에 그쳤다.

최기훈 피델리티자산운용 이사는 "은퇴 후 필요한 금액이 현재의 수입 수준이 됐으면 한다고 답한 것은 그만큼 은퇴준비를 체계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가장 높은 수준을 원하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이와 함께 한국 직장인들이 얻고 있는 은퇴준비에 대한 정보량이나 질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은퇴준비를 하면서 '필요한 금융정보에 대해 매우 잘 안다'고 대답한 비율이 7%에 불과해 조사대상 국가 가운데 스웨덴(6%)과 함께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독일(28%) 오스트리아(27%) 네덜란드(23%) 스위스(22%)는 20% 이상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은퇴준비에 대한 정보도 국내 직장인은 체계적이지 않은 정보가 많은 인터넷(52%)을 통해 가장 많이 습득하고 있었다. 반면 독일(70%)을 포함,오스트리아(61%) 스위스(58%) 프랑스(49%) 등의 직장인들은 재무상담사를 통해 은퇴준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다. 한국 직장인들 가운데 재무상담사를 통해 은퇴준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10%에 그쳤다.

이에 따라 국내 고용주와 근로자,금융기관 모두 은퇴준비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은퇴에 대해 미흡한 준비는 직장인뿐 아니라 퇴직연금을 선정해야 할 회사나 퇴직연금 상품을 만드는 금융회사들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 이상인 고령화 사회에 2007년에 진입한 이후 고령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고 있는 국내 상황을 고려하면 양이나 질적으로 은퇴 준비작업이 한참이나 뒤졌다는 진단이다.

최 이사는 "이번 설문조사는 한국의 경우 지난해 8월 실시한 반면 유럽국가들은 2007년 실시한 것이어서 시차를 고려하면 사실상 한국 직장인들의 은퇴준비 상황은 유럽 국가들보다 크게 늦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며 "유럽 국가들의 경우처럼 퇴직연금제도를 먼저 정착시키고 기업의 고용주가 종업원의 은퇴 프로그램을 같이 연구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