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실종,끝없는 소모적 정쟁,지각 국회에 개점휴업,뒷전에 밀린 민생,리더십 부재 속에 표류하는 여야.

2008년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10년 전 모습 그대로다. 정치의 본질인 국민을 편안하게 하기는커녕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지경이다. 정치가 불신을 넘어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유다. 굳이 성적표를 매긴다면 F학점을 면키 어렵다.

무엇보다 정치 실종이 심각하다. 대화와 타협이 사라진 지 오래다. 어렵사리 협상테이블에 앉아도 양보 대신 싸움만 하다 얼굴을 붉히고 헤어지기 일쑤다. 게다가 우여곡절 끝에 합의한 것도 당내 반발로 뒤집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9월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다 당내 역풍에 강경모드로 급선회한 게 대표적 사례다. 기본적으로 신뢰가 쌓이긴 어려운 구조다. 그 결과가 거대 여당의 수를 앞세운 밀어붙이기와 소수 야당의 회의장 점거라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걸핏하면 힘의정치에 의존하는 여당이나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조차 거부하는 야당의 행태는 2008년에도 어김없었다. 한나라당의 쟁점 법안 강행 처리 시사에 민주당은 실력 저지로 맞섰다. 민주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점거는 4년 전 연말 본회의장을 점거했던 한나라당의 재연이다.

쟁점이 4년 전 국가보안법 등 4대 개혁법안에서 이번엔 방송법 등 미디어 법안으로 옮겨갔을 뿐 본질은 닮은꼴이다. 정권 교체로 여야의 공수만 바뀌었을 뿐 행태는 그대로다.

밥그릇 싸움에 지각 개원과 파행은 예사다. 18대 국회 문을 여는 데만 82일이 걸렸다. 그나마 문을 연 뒤에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헌재 접촉 발언'과 쌀직불금 국정조사 등을 둘러싼 정치싸움으로 허송했다. 정기국회의 절반 정도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12월마다 반복되는 '한밤의 정치쇼'도 이어졌다. 쟁점 법안 처리를 놓고 매일 자정을 넘기는 기싸움이 되풀이됐다. 2006년 새해 예산안이 통과된 건 오전 4시였다. 이런 '올빼미 행태'는 소모적 정쟁과 고비용 저효율 정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0년 만의 정권 교체 후 여야가 뒤바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리더십 부재가 원인이다. 힘 없는 원외 대표에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의 갈등구조를 극복하지 못한 한나라당은 사사건건 불협화음으로 '모래알 정당'으로 전락했다.

그러니 과반을 훨씬 넘긴 172석도 힘을 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10% 지지율에서 몇 년째 맴돌고 있다. 강온파 간의 노선 싸움에 지도력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자꾸만 강경 투쟁쪽으로 흐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런 구태 정치의 악순환을 끊을 힘도 의지도 현 정치권에는 없는 것 같다. 한 중진 의원이 사석에서 "우리 정치에 더이상 희망은 없다"며 "의원직 사퇴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할 정도다.

2009년에도 4월 재보선 등 지뢰밭이 널려 있어 여야 간 공멸의 정치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구태 정치를 지켜봐야 하는 우리 국민의 정치혐오증은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