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균 前나산그룹회장 법무부 상대 승소

거액의 지방세를 체납했더라도 재산을 국외로 빼돌릴 가능성이 작으면 출국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이경구 부장판사)는 안병균 전 나산그룹 회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안 전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고 22일 밝혔다.

나산종합건설은 서울 양천구에 토지 6천400여㎡를 사들여 1995년 12월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는데 이때 충청은행 명의의 채권최고액 325억 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됐고 2000년 초 이 땅은 임의경매 절차를 거쳐 팔렸다.

매각 당시 나산종합건설은 이 땅에 대한 1997∼2000년분 종합토지세 약 14억 원을 체납한 상태였고 지방세법은 다른 채권보다 지방세를 우선 징수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저당권은 이 조항 시행 전에 설정됐고 지방세법이 소급 적용되지도 않아 서울 양천구는 종합토지세를 전혀 배당받지 못했다.

이후 나산종합건설은 부도 처리됐고 종합토지세 등을 징수하지 못하게 된 양천구는 법인이 지방세를 내지 못하면 과점주주가 지분 비율만큼 납세의무를 지도록 한 규정에 따라 안 전 회장에게 이를 대신 내라고 고지했다.

안 전 회장이 세금을 내지 않자 서울시는 올해 6월 초 그가 출국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며 법무부는 정당한 사유 없이 지방세 5천만 원 이상을 체납하면 출국금지할 수 있다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6개월간 출금 처분했다.

그는 다수 부동산을 갖고 있지만 여러 채권자에 의해 가압류되거나 저당권 등이 설정돼 있고 예금보험공사도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해외 위탁자산을 조사했지만 숨긴 재산을 발견하지 못했다.

안 전 회장은 "해외로 빼돌릴 재산도 없고 가족과 함께 국내를 생활근거지로 하고 있는데 출국금지한 것은 재량권 일탈"이라며 소송을 냈고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안 전 회장의 부동산은 여러 채권자에 의한 채권보전 절차가 이뤄졌고 다른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으며 가족 모두 국내를 근거로 생활하고 있어 출국을 이용해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킬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고 판결했다.

이어 "지방세 체납자에 대한 출국금지는 재산을 빼돌리는 등 강제집행을 곤란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는 게 주목적이지 외국으로 달아나거나 국외에 장기체류하는 것을 막는 등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안 전 회장이 2004년 12월 이후 빈번하게 출입국했으나 이는 부인이 운영하는 회사의 경영자문역으로 각 회사의 비용 부담으로 이뤄진 것이며 그가 납세의무를 지게 된 것도 법률 규정의 공백 때문이었던 점을 함께 고려했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