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건설 · 엠코 · KCC건설 등 시공제안 줄이어

'베르디움'이란 아파트 브랜드로 주택사업을 벌이고 있는 중견건설업체 호반건설.요즘 이 회사 개발사업부 직원들의 책상 위에는 아파트 사업제안서가 수북이 쌓여있다. 호반건설은 '베르디움' 인지도가 높지 않아 그동안 아파트 사업을 많이 벌이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지방 주택사업을 축소하기 위해 '금싸라기 땅'으로 알려진 광주광역시 광천터미널 앞 택지를 대림산업에 매각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회사자금이 쌓인 것이 올해에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8일 "아파트 사업을 추가로 진행할 여력이 있는 건설사들이 많지 않아 시행사들의 사업제안이 몰리고 있다"며 "지난해 1397가구였던 분양물량이 올해 2416가구로 늘어난 데 이어 내년에는 9870가구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요자들에게 인지도가 낮아 주택사업을 활발히 벌이지 않았던 중견 건설사들이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기업은 대형 건설사들이 미분양 적체,중소 건설사들은 자금난으로 주택사업을 축소하는 가운데 안정된 자금상황을 밑거름으로 오히려 사업을 확장하는 추세다. 수도권의 알짜 택지는 물론 과거에는 대형 건설사들이 대부분 차지하던 재개발·재건축 프로젝트도 '골라가고' 있다.



호반건설은 자금난에 시달리던 대주건설로부터 지난해 말 인천 청라지구 20블록의 시공권을 230억원에,지난 3월에는 29블록을 300억원에 매입했다. 또 신영으로부터는 지난 5월 경기도 고양시 삼송지구 22블록 시공권을 넘겨받았다. 호반건설은 이 가운데 지난달 청라지구 20블록에서 아파트 620가구를 분양해 전 물량을 1순위에서 마감시키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내년 상반기에는 청라지구 29블록과 삼송지구 22블록 분양에 나설 계획이다.

대형 건설사들이 거의 독식하다시피하던 수도권 재개발·재건축 사업도 자금력이 뒷받침되는 중견 건설사들에 떨어지고 있다. 아파트 브랜드 '스위첸'의 KCC건설 주택영업부 관계자는 "시공능력 기준으로 1군 업체들이나 물어가던 덩치 큰 수도권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대한 제안서가 최근 눈에 띄게 늘었다"며 "시공단가를 넉넉하게 책정해 주겠다는 제안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은 그동안 토목 위주로 사업을 펼친 결과 주택사업에서의 손실이 적어 상대적으로 사업여건이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파라곤'을 짓는 동양건설산업의 관계자는 "예전에는 시행사 관계자들이 고자세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180도 바뀌었다"고 전했다.

다른 건설사들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받지 못해 공동시공 등을 제의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아파트 '에일린의뜰'의 일신건설 관계자는 "대출을 받기 힘든 건설사들이 먼저 제의하거나 아예 금융권에서 시행사를 직접 연결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요즘은 무조건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기업이 최고"라며 "내년에는 중견 건설업체 간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