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빈 <국민대 교수ㆍ정치학>

아직도 표류중인 국회 예산안, 리더십 탓 말고 생산성 고민을

이번에도 예산안이 법정 시한을 넘길 것 같다. 계수조정을 한다지만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까지도 해결이 날지 불투명하다. 한시가 급한 민생법안이나 경제위기 대처 법안들이 소위 '패키지딜'을 기다리고 있다는데 제사보다 젯밥 싸움이 더 치열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8대 국회는 시작부터 대치국면이었고 지금까지 한번도 시원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원 구성하는데 몇 개월을 허비했고,등원하고 나서는 인사청문회와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의원을 감싸느라 대치했고,FTA 등 법안 비준은 손도 못 대면서 그나마 새로운 법안이 제안되면 즉각 정쟁으로 비화됐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마치 18대 국회만 못된 국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전에도 그랬다. 예산안만 보더라도 지난 5년간 한번도 시한 안에 통과된 적이 없었다. 불임국회,방탄국회,막판 무더기 통과,날치기 통과 등 늘 들어오던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의 현대 정치사에서 어느 국회든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우리는 이게 다 대통령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독재정권 아래에서는 국회가 '통법부'밖에 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감내해 왔고,독재 권력만 물러나면 국회는 정상화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리고 문민시대.그러나 '3김(三金)'이든 노무현 대통령이든 차이가 없었다. 이제는 독재 권력이 문제가 아니라 여소야대가 문제가 됐다.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이기 때문에 국회가 공전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명박 정부가 지금 분점정부이기에 시달리고 있는가. 여당은 소위 친이친박 간의 소원함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172석의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 지도부의 문제인가,아니면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인가.

지금 대통령은 국정수행의 난맥상으로 인해,비전 없음과 인물 없음으로 인해 국민의 지지도가 낮은 게 사실이다. 대국민,대국회 입법 리더십을 발휘하기에는 아주 불리한 상황이다. 여당의 지도부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다. 야당과 국민을 설득하는 걸 기대하기 힘들다. 야당은 언제나 여당 탓을 할 수 있으니 상대적으로 덜 다급하다. 여든 야든 모든 것을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로 돌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국회의 교착상태가 결국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로 귀착된다'라고 결론을 내려도 되는 것일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대통령은 한 사람이고 한 번 뽑으면 바꿀 수가 없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삼권을 분립시키고 권한과 책임을 나눠 갖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지금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와 대통령 간에 권력분립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지금 18대 국회의원은 2012년에 다시 선거전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때 대통령이 공천을 안 해 주면 그만이다. 그러니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는 자명한 일이다. 야당도 다르지 않다. 국회의원 개개인의 의사가 다 같을 수는 없지만 당이 명령을 내리면 일사불란하게 싸워야 한다. 이래서 대치 상태가 끝없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각자가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시작부터 독립을 못한 사람들에게 독자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을 지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이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에게 입법 리더십을 발휘하라는 것도 어폐가 있다. 야당 의원도 당론을 따라야 하는데 대통령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 결국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이나 당 지도부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수성가할 수 있도록 공천권을 지역구 주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경제위기 속에 이제 모두들 기나긴 구조조정의 터널을 지나야 할지 모른다.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구조조정의 잣대는 생산성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