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논설위원·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

예금보다 투자, 펀드열풍 주도했던 세대

경제위기는 언제나 40대를 희생양 삼아

"오마이 달링! 클레멘타인♬"을 그리워하는 이 노래는 포티나이너(49년도 사람)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포티나이너는 1849년 미국 서부의 금광으로 몰려들었던 사람들을 말한다. 무일푼의 젊은이들은 캘리포니아 광산열풍에 이끌려 저마다 망치와 뜰채를 들고 서부로 서부로 몰려갔다. 그러나 대부분이 허황한 열정을 접어야 했기에 이 노래는 애잔한 멜로디와 함께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노래하는 미국의 대표곡이 되었다. 광부들이 입었다는 리바이스 청바지만이 당시를 증언할 뿐이다.

채만식의 탁류는 식민지 시대의 미두(米豆) 시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인간의 탐욕과 타락 과정을 그려 지금까지도 고전이 되어 있다. 조선의 순종적 여인이었던 초봉의 인생유전 속에서 우리는 상품 선물인 미두 시장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좌절의 인간 군상을 보게 된다. 탁류는 1930년대 대공황기 당시 식민지 조선의 뒤틀린 모습을 소름끼치게 전해준다. 미국에서는 1930년대 대공황을 겪고 2차대전을 경험한 세대를 스윙(swing) 세대라고 부른다. 인간의 삶은 이렇게 시대에 의해 규정되고 또 휩쓸려 간다.

세계 금융위기로 증시가 함몰하고 음험한 불황의 공포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지금 직격탄을 맞아 가장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 세대는 아마도 386세대일 것이다. 1960년대 출생자들인 이들은 이미 40대로 훌쩍 성숙했지만 그다지 명예롭지도 않은 '386'이라는 이름표를 아직도 달고 있다. 1960년대의 유례없는 세계적 호황 가운데 출생해,1970년대 고도성장 과정에서 컸고,1980년대에 그들의 이념적 정향을 갖게 된 세대다. 체제저항적이며,진보적이고,거칠 것이 없었기에 IMF사태가 터지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사회 중심세력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지 벌써 10년이다. 더구나 외환위기 이후 금융업과 증권업이 부상하는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이 분야에 진출했던 세대이기도 하고 증권투자를 통해 본격적으로 자산증식을 시도했던 아마도 첫 세대일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 유독 펀드열풍이 불었던 것도 인구동학적으로는 바로 386들이 대거 증권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산업보다는 금융, 예금보다는 투자가 익숙한 첫 세대라는 점에서 지금의 금융위기는 바로 이 세대들에게 첫 패배감을 안기는 사태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40대라면 직장에서는 이미 중간 간부요,월급이 쌓여 자산축적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며,노후를 가시권에 놓는 나이다. 경제 위기나 사회변동은 바로 이 때문에 언제나 40대를 때린다. 그것은 10년 전 4050들이 구조조정의 타깃이 되면서 집단적인 '상실의 세대'가 된 것과도 비슷하다. 늦은 저녁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듣게 되는 탄식들은 대부분 386세대,아니 40대들의 어깨 너머로부터 들려 온다. 그러나 좌절하지 말라.386을 잇고 있는 소위 X 세대들은 더욱 나쁜 상황 아닌가. 사회 변동이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것은 언제나 있어왔던 일이다. 그리고 책임 의식은 때로 고통 속에서 배태된다. 386들이 이 과정을 이겨내고 단순한 안티테제가 아닌 진정한 중심 세대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 사과드립니다.

21일자 '정규재 칼럼'과 관련하여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소버린 측의 이사후보였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기에 정정합니다. 조 교수는 소버린과는 일절 관련이 없고 오히려 SK 측의 사외이사로 선임됐으며 투기자본에 대해 엄정한 비판적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조 교수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