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미분양아파트 해소 대책이 법정싸움으로 비화됐다. 대한주택공사에 미분양 아파트를 매각한 건설사의 기존 계약자들이 재산상 피해를 봤다며 해당 건설사를 상대로 계약취소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에 따라 미분양 아파트 할인매입후 임대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정부의 해법이 난관에 부닥쳤다.

8일 부산 용당동 K아파트 입주민들에 따르면 작년 11월께 이 아파트 구입 계약을 맺은 26명의 입주민들은 K건설을 상대로 계약취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최근 부산지법 동부지원에 제기했다.

원고 측은 시공사가 작년 10월 주공에 이 아파트 미분양분의 매입을 신청했으나 자신들과 계약을 맺을 당시엔 이런 사정을 알리지 않았다며 사기와 착오에 의한 계약이라고 주장했다.

입주민 최형규씨는 "전체 712가구 중 388가구가 지난 4월 주공에 매각됐다"며 "단지의 절반 이상이 임대 아파트가 돼 시세 하락이 뻔히 예상되는 데도 계약 당시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명백히 잘못됐다"고 성토했다. 시공사는 388가구의 분양가(889억원)를 22% 할인해 694억원에 주공에 판 것으로 알려졌다.

원고들은 계약취소 외에도 이사비,인테리어비용,취·등록세,등기관련 비용 등 계약과 입주에 따른 재산상 손해도 배상해줄 것을 동시에 청구했다.

주공의 미분양아파트 매입·임대에 대한 반발은 대구에서도 생겼다. 중견 건설업체인 T사가 진천동에 지은 아파트 미분양분(전체 347가구 중 167가구)을 지난 6월 주공에 분양가의 20~25%를 할인,매각하자 입주자들이 사기분양이라며 들고 일어났다.

입주민들은 정치권과 지자체 등에 민원을 집어넣어 지역구 국회의원은 물론 대구시의회 의장,대구시 도시주택본부장까지 사태 중재에 나섰다. 입주민들은 계약을 취소하거나 다른 아파트로 이주시켜주거나 주공 임대와 똑같은 조건 적용 중 한 가지를 해결책으로 요구하고 있다.

속칭 '땡처리' 민간업자에게 미분양분을 할인 매각하는 사례도 입주민들과의 마찰을 빚고 있다. 부산시 명륜동의 S사,경남 마산시 오동동 S사 아파트 등이 준공후 미분양아파트를 해소하려고 분양가보다 35% 싸게 '땡처리' 업자에게 팔았지만 기존 계약자들의 반발이란 역풍을 맞았다. 충남 조치원의 U사도 30% 할인매각,반발을 불렀다.

부동산 업계에선 30%씩이나 할인해서 팔아야 하는 건설사의 고충도 이해하지만 입주민들의 억울한 사정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본다.

분양대행업체인 우영D&C 조우형 대표는 "지역 미분양 물량을 전문으로 다루는 '땡처리' 업자에게 넘기면 그나마 소문도 덜나고 입주민과 협상의 여지도 있지만 주공이라는 공공기관에 대규모로 팔 경우 임대 아파트로 변모하게 되고 법적 분쟁으로 공론화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정부 내지 공공기관이 미분양 아파트를 할인 매입하는 것 자체가 과도한 시장개입이고 법적 분쟁을 불러올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미분양아파트 매입 정책은 재고돼야 한다고 시장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