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20주년' 기념 세계헌재소장회의 기자회견

"헌법재판소가 선고를 하는데 있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겠다."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은 3일 헌법재판소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세계헌법재판소장회의가 열리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헌재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선고 시기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정치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지적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이 헌재소장은 "어떤 시기에 특정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는 헌재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는 종합부동산세 위헌소송과 간통죄 위헌소송에 대해서는 "공개변론을 마친 사건의 경우에는 빠른 시일 내에 선고를 하겠다"며 "올해 안에 선고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종부세 위헌소송에 대한 공개변론은 지난 7월 이뤄졌으며 간통 위헌소송 공개변론은 오는 11일 열릴 예정이다.

이 헌재소장은 아울러 헌재와 관련해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헌법재판관들이 모두 법조인으로 구성돼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현재와 같이 법조인이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재판관 다양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번 회의에서 미국 대법관ㆍ영국 대법원장 내정자와 대화를 해본 결과 비법조인이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으로 임명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또 헌법 연구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도 이 헌재소장은 "공법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를 연구관으로 선발하고 있고 선발 이후에도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 국내 유명 대학 헌법학 교수 3∼4명을 연구위원으로 초빙해 연구관과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도록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창립 20주년을 맞은 헌재의 공과에 대한 평가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 20년간 헌재의 일관된 목표는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고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지키는 것이었고, 앞으로 헌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미국의 실용적인 노선과 독일의 철학적인 노선을 종합해 한단계 더 높은 제3의 길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독일의 헌법재판 제도는 세계 양대 산맥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이번 세계헌재소장회의를 마치는 소회에 대해 "헌재가 지난 20년간 세계적인 회의를 주관한 적이 없어 준비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며 어려움을 토로한 뒤 "세계 각국의 헌법재판 제도가 상이하지만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국가권력 남용 제어라는 공통 목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평가했다.

이어 "재판 당사자가 법률조항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경우 법원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이 기각된 뒤에도 헌법소원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외국인들이 감명을 받은 제도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수출해야 할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우리 헌법재판 제도에 대한 자부심도 숨기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2항은 법원에서 법률의 위헌여부심판 제청신청이 기각된 경우에도 신청 당사자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 구제 수단을 부여하고 있다.

그는 "20년간 비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치는 시절도 있었고 봄철 같은 따사로운 계절도 있었다"고 회상한 뒤 "국민 기본권 보장과 헌법의 가치 수호라는 헌재의 존재 이유는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jesus786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