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사태와 관련,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유럽연합(EU)이 당장은 제재를 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된다.

또 그루지야와 러시아 간 외교 관계 중단이 사실상 결정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 사태가 파국을 치닫지 않느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EU 제재와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 EU 순회의장국인 프랑스 고위 외교 소식통인 29일 "EU는 그루지야 사태를 논의할 다음달 1일 긴급 정상회담에서 6개 항의 평화안이 적용돼야만 한다는 입장이 강조되겠지만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부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 소식통은 아직 모스크바와 대화국면에 있지 제재국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제재를 위한 시간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미구엘 앙헬 모라티노스 스페인 외무장관도 이날 대화가 먼저 필요하다면서 러시아에 대한 제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앞서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은 긴급 정상회담의 목적이 "그루지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용인할 수 없다는 우리의 단호한 결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안드레이 네스테렌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EU가 러시아에 대해 제재를 해 러시아와 협력을 파괴해서는 안된다"면서 "감정 대응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정상회담에 맞춰 러시아가 서유럽 국가들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중단할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독일과 폴란드 등 일부 국가들이 진위 파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울리흐 윌헬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실 대변인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러시아가 EU의 제재 위협에도 불구하고 원유 공급 계약을 충실히 지킬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세르게이 슈마트코 러시아 에너지 장관도 "러시아는 두르즈바 송유관을 통한 유럽으로의 안정적 원유 공급이 유지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할 것"이라면서 보도 내용을 반박했다.

◇러-그루지야 외교관계 중단되나 = 그리골 바샤드제 그루지야 외무 차관은 이날 "그루지야는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중단할 것"이라면서 "이미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그루지야 의회는 전날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단절하도록 정부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으며 두 자치공화국에 배치된 러시아군을 `점령군'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현 상황에서 외교적 접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네스테렌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러시아는 그루지야와 외교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앞서 그루지야는 모스크바 주재 그루지야 대사관 직원 수를 대폭 축소키로 결정했다.

◇자치공화국 접경 긴장 고조 = 불안한 휴전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가 남오세티야에 군사 기지를 설치하고, 그루지야군이 또 다시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두 자치공화국과 그루지야 접경지역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와 남오세티야는 다음달 2일 남오세티야 수도 츠힌발리에서 러시아 군사기지 설치 협정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인테르 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남오세티야 정부 대변인은 "주민들은 여전히 그루지야가 다시 공격할 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카카 로마이아 그루지야 국가안보회의 의장은 "남오세티야 내 어떤 러시아 군사 기지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아나톨리 노고비친 러시아군 부참모장(중장)은 "러시아군이 접경지역 등에 21개의 감시초소를 세웠다"면서 "마찰 지역 인근에서 그루지야군의 움직임이 속속 보고 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전날 압하지야에서 그루지야 무인 정찰기가 격추됐다는 사실은 그들이 무장공격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면서 "그들의 공격 목표에는 러시아 평화유지군의 주둔지와 압하지야의 수후미항, 철도와 댐 등도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또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그루지야에 대한 군수물자 보급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그루지야가 군사력 회복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다음달 5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의에서 그루지야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창설된 CSTO는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러시아, 벨로루시 등 옛 소련 공화국 출신 7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러시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東進)과 미국의 미사일방어(MD)시스템 배치에 맞서기 위해 CSTO 회원국들과 군사적 연대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28일 상하이협력기구(SCO)에서 회원국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러시아가 다시 한번 동맹국의 지지를 이끌어 낼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남현호 특파원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