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금메달이 소원이라지만 저는 동메달이면 됩니다. 4살짜리 딸 민주의 목에 꼭 메달을 걸어줄 겁니다"

2008 베이징올림픽 복싱 메달 기대주 백종섭(28.충남체육회)에겐 `세계대회 8강 징크스'가 있다.

2001년부터 8년째 라이트급(60㎏) 국가대표로 활약해 온 그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냈지만 세계대회에선 한 번도 8강을 넘어선 적이 없다.

200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선 8강에서 올림픽 3연패를 한 쿠바 강호와 맞닥뜨리는 바람에 졌고, 2년뒤 세계선수권도 마찬가지였다.

4년 전 아테네올림픽에선 8강에서 당시 18세 소년 아미르 칸(영국)을 얕보고 들어가다 1회 1분37초 만에 RSC 패를 당했다.

이번엔 어떻게든 그 벽을 넘고 싶었다.

대표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그에겐 꼭 메달을 따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인파이터 중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리는 백종섭은 지금까지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현역 은퇴가 멀지 않았지만 아직 군대에도 다녀오지 않았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따지 못하면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같이 사는 부인 차문이씨와 딸 민주를 남겨두고 입대해야 한다.

베이징에서 메달을 따면 태권도를 전공한 아내와 함께 태보(복싱+태권도) 체육관을 차리는 게 그의 소박한 꿈이었다.

절박해진 그는 딸 민주가 자주 경기를 일으키고 입원했다는 얘기를 듣고도 제대로 가보지 못한 채 훈련에 열중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부상이 백종섭의 발목을 잡았다.

백종섭은 15일 16강전에서 이 체급 강자 피차이 사요타(29.태국)를 10-4로 물리친 뒤 19일 흐라칙 자바크얀(아르메니아)과 운명의 8강전을 앞두고 있었다.

나흘 전 경기도중 목과 가슴을 얻어맞은 게 문제가 됐다.

목과 가슴에 통증을 호소한 백종섭은 병원에서 `외부 충격으로 기관지가 찢어졌고, 여기서 새어나온 공기가 심장 부근까지 찼다'는 진단을 받았다.

일단 고비는 넘겼지만 무리하게 경기를 치르다 기관지가 파열되면 생명에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컴퓨터 단층촬영(CT) 자료를 한국과 중국 병원 4곳에 보냈지만 결과는 같았다.

18일 내내 고민하던 천인호 대표팀 감독은 결국 경기 당일인 19일 오전에야 기권 의사를 밝혔다.

백종섭은 "나는 괜찮다. 링 위에서 죽게 해달라"고 끝까지 출전을 호소했지만 그의 목숨을 걱정한 의무진과 코칭스태프는 그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베이징=연합뉴스)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