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 kimha@medimail.co.kr>

남성적이고 논리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는 탓인지,늦바람이 분 탓인지,최근 에스트로겐(여성 호르몬)이 넘쳐 흐르는,그러나 점잖은 취향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 재미를 붙였다. 그런데 어느 휴일,남편이 글질을 하고 있는 마누라를 보고 한마디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인사 청문회라도 나가게 되면 곤란한 기록이 될 텐데…." 인사 청문회는 완전히 농담이겠지만 기록이 남는 건 사실이란 걸 깨닫고 움찔해진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지금과 같은 인터넷 세상을 상상하지 못했다. 인터넷이란 그저 여러 곳의 컴퓨터를 연결해 수준 낮은 정보를 제공하는 텔레비전의 또 다른 변형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인터넷은 이제 문명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생활 필수품이 됐다. 휴가 때도 텔레비전보다 인터넷 끄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이 무서운 것도 사실이다. 좀 극단적 얘기이지만 얼마 전에 나온 공포 영화 '킬 위드 미'는 인터넷 살인중계에 가담하는 익명의 대중이 얼마나 흉폭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인터넷의 편리함을 활용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우선 이메일은 용도에 따라 나누어 관리한다. 공무용도 병원과 학교 업무용을 나누고,개인용 이메일은 공무용과는 완전히 따로 관리한다. 하루에 메일을 몇 가지나 열어 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검색 엔진에 이메일을 넣으면 개인 정보가 그대로 노출되는 무서운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다.

또 컴퓨터에 특별한 문제가 없어도 정기적으로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고 프로그램을 새로 설치한다. 그럴 때마다 아주 조심해서 다운로드하지만 컴퓨터에 많은 트로이 목마(해킹 프로그램)들이 숨어 있음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컴퓨터 하드웨어를 교체할 때는 중요한 파일들은 삭제가 아닌 덮어 쓰기를 해서 청소한 후 교체한다. 물론 인터넷 뱅킹은 하지 않는다.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은행을 방문해 업무를 처리한다. 금융 관계 일을 하는 지인들이 인터넷 뱅킹을 안 하는 것을 보고 나름대로 터득한 이치다. 아무리 익숙한 커뮤니티라도 익명 커뮤니티인 경우 절대로 개인 정보나 사진,특히 아이들 사진은 올리지 않는다. 자식은 부모의 영원한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에 아이들에 관한 정보 보호에 대해서는 몹시 민감해진다.

개인 컴퓨터에 들어 있는 아이들 사진도 해킹 프로그램으로 빼 내는 것이 가능한데,하물며 인터넷에서야….이렇게 나름 중무장(?)을 하지만 오늘도 클릭 한 번의 편리함은 나를 무서운 신세계로 유혹한다. '설치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