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조를 요청하는 전통문에 북한은 대답도 없고,CCTV는 작동이 안 된다고 하고,사고 현장에는 발도 못 들여놓고,한가닥 기대를 걸었던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방북했다 빈 손으로 돌아오고….

금강산에서 발생한 박왕자씨 총격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총괄하고 있는 통일부의 심정을 '되고송'에 올려보면 이럴 터다. 통일부가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마련했던 시나리오들이 하나둘씩 휴지조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시계바늘은 어김없이 돌아 벌써 사건이 발생한 지 엿새가 흘렀다.

지금 통일부의 가장 큰 고민은 '쓸 카드를 다 썼다'는 데 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내놓을 히든카드도 신통한 게 없다는 데 있다. 때문에 썼던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15,16일 브리핑을 통해 "진상 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전통문을 다시 보내거나 윤 사장 방북을 다시 추진하는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전통문과 윤 사장 방북은 이미 별 소득이 없었던 방법들이다. 합동조사단을 만들고 부검 결과도 나왔지만 사건이 벌어졌던 현장과 당시 상황을 정밀분석하지 않으면 납득할 만한 결과를 추론할 수 없다. 합동조사단이라는 것도 남측만으로 구성되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워낙 답답해서인지 '국제적인 공조'도 거론됐다. 김 대변인은 "아직 추진하고 있지는 않지만 필요하다면 중국 일본 등 다른 국가의 협조를 받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제 공조가 효과 있을지도 미지수지만 이미 미,중,일 등 주변 강대국들과의 외교 관계가 상당히 틀어진 현 상황에서 그들이 얼마나 도와줄지도 의문이다.

이번에도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대화 창구의 단절에 있다. 통일부는 지금 북한과는 대화 창구가 마땅치 않아 사태가 꼬이고 있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사건은 정권 초기 없어질 뻔 했던 통일부의 존재 가치와 그 중요성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통일부가 계속해서 현대아산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통일부의 존립 문제는 다시 도마 위에 오를 수도 있다.

임원기 정치부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