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시장이 난기류를 보이고 있다. 여러 요인 가운데 외국인 자금 이탈이 가장 큰 요인이다.

지난달 9일 이후 외국인 자금의 이탈 규모는 약 7조원에 이른다. 올 1월과 맞먹는 수준이다.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에서도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고 있으나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이 때문에 올 들어 견실한 움직임을 보였던 국내 주가가 떨어지면서 일부 투자자들은 눈물을 흘릴 정도로 재산 손실이 많이 나고 있는 게 요즘 우리 증시의 현실이다. 또 외환시장에서는 환율 상승에 따른 인플레를 우려해 최후의 보루인 외환 보유액을 동원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동안 잠복했던 위기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처럼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외국인 자금이 아시아 증시를 이탈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하나는 유가가 오를 때 아시아 국가들은 외국인이 주목하는 인플레에 취약하다는 판단에서다. 다른 하나는 추가 증거금 부족이 발생해 이를 보전해 달라는 요구(margin call)를 받은 일부 미국 금융사들이 이에 응하는 과정에서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투자 자금을 회수(deleverage)하고 있는 것도 원인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 외국인 자금 이탈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많다는 점이다. 이 원인을 잘 따진다면 현재 난기류를 보이고 있는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원인별 선제적인 정책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지금처럼 사후적으로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정책은 그 효과가 지속되기 어렵고 후에 많은 비용을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요인들이 지적되고 있지만 월가에서는 무엇보다 정책 기조가 급선회된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현 정부 출범 초 성장 우선과 친기업·증시 정책 등을 믿고 1년 이상 목표로 투자해 놓은 상황에서 불과 3~4개월 만에 안정 쪽으로 정책 기조를 급선회한다면 아무리 간 큰 투자자들이라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같은 맥락에서 잦은 시장 개입을 문제로 꼽고 있다. 외국인을 비롯한 경제 주체들은 환율 등을 예상해 각종 계획을 세워놓은 상황에서 목표가 변경됐다고 해서,아니면 시장이 '쏠림'이라는 비이성적인 현상을 보인다고 해서 정부가 '마치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식으로 시장에 개입한다면 누가 한국에 투자하겠느냐고 반문한다.

또 최근 투자 불안 요인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 지고 말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불평한다. 당위성 여부와 관계 없이 촛불 시위,노조 파업 등은 한국에 투자해 놓은 외국인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이럴 때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그 현상과 원인을 책임 있는 정책 당국자가 설명해 줄 경우 긴 호흡을 갖고 기다릴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외국인 자금 이탈을 단순히 '외부 환경' 탓으로만 돌리는 정책 당국자들의 시각과 달리 우리 나름대로 그 규모를 줄일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무엇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경제 설명회(IR)를 개최해 우리 경제를 있는 그대로 알려 주는 노력이 시급하다.

외국인 입장에서 투자 대상국의 정책 일관성은 생명처럼 여겨지는 대목이다. 그런 만큼 정부는 효과를 보기까지 예상할 수 있는 여건을 감안,정책을 신중히 결정해 추진하되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최근처럼 '컨틴전시 플랜'을 추진해 나간다 하더라도 가능한 한 전체적인 정책 기조는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는 점을 곰곰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정책은 국민을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정책 당국자는 '불도저'와 같은 인상을 풍겨서는 안 된다. 그 무엇보다 국민을 위한다는 자세(pro bono publico)에서 정책이 추진돼야 한국에 투자해 놓은 자금을 빼 내지 않을 것이라는 한 외국인의 지적이 한동안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를 우리 정책 당국자에게 되묻고 싶다.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