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논란 등으로 '지도자의 리더십과 소통' 문제가 우리 사회의 이슈로 떠올랐다. 국가든 기업이든 일방적으로 지시만 하는 리더는 단기적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조직원들의 신뢰를 얻어 장기적인 성공에 이르기는 어렵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7-8월호는 실적이 뛰어날 뿐 아니라 직원들의 애사심도 높은 기업(HCHP:High Commitment,High Performanceㆍ이하 '성공한 기업') 22곳을 선정,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을 분석했다. 마이클 비어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와 러셀 아이젠스태트 전 하버드대 교수 등이 공동저술한 이 보고서를 통해 성공한 리더십의 특징을 살펴본다.

기업을 이끄는 CEO가 주주 가치(실적)에만 집중하다 보면 직원들의 의욕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역량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반면 직원들의 만족도나 기업문화 등에만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 대외적인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성공한 CEO는 '성과'와 '사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잘 유지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재무적 성과 이상의 책임감

성공한 CEO들은 기본적으로 투자자들의 기대만큼 실적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못하면 CEO 자리를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단지 숫자로 드러나는 재무적 성과만을 위해 일하진 않는다. 성공한 CEO는 기업 내부에서 승진했든지 아니면 외부에서 영입됐든지 간에 회사의 장래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리프 요한슨 볼보 CEO는 "조직에서 일하는 것은 나에게 돈 버는 것 이상의 영혼이자 가치이자 목적"이라고 말한다. 가톨릭 신자로 미국 의료기기업체 벡톤디킨슨의 CEO인 에드워드 루드위그는 "CEO가 되는 것은 현재보다 더 나은 회사를 만들라는 '소명'에 응답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CEO들은 실적 향상을 위해 사업부문 매각 등 특별한 결심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요르마 올릴라 전 노키아 CEO는 휴대폰 사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하면서 나머지 사업부문을 매각했다. 영국 레저업체인 윗브레드의 알란 파커 CEO도 성장성이 큰 '프리미어 인'과 '코스타 커피'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자신이 시작했던 메리어트호텔 체인 사업을 매각했다. 이들은 매각 결정이 회사의 근본적인 역량과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하는 과정이었다고 확신했다. 올릴라는 "CEO로서 나의 두 가지 임무 중 하나는 사람들이 휴대폰 사업의 잠재력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고,또 다른 하나는 성장성 없는 사업을 잘라내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조직의 중심에 서 있어라

이처럼 과감한 조치를 취하는 데 필요한 '정통성'은 CEO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CEO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한다. 직원들의 애사심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CEO는 조직의 내부구조를 허물어뜨릴 위험이 있다. 이런 상태에선 CEO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려 하면 나머지 조직은 꿈쩍도 않거나 최악의 경우 반대로 향한다. 성공한 CEO는 직원들과 일상적이고 끈끈한 접촉을 통해 항상 조직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첫째,진실을 숨기지 않는 솔직함으로 조직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심지어 자신의 실책에 대해서도 솔직해야 한다. 루드위그 CEO는 회사의 전략을 수행하는 데 무엇이 걸림돌인지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자기가 최고재무책임자(CFO)였을 때 시작했고 이미 1억달러 이상이 투입된 SAP 프로젝트(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 구축)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루드위그는 프로그램이 잘못됐고 자기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사내에 공개적으로 밝힌 후 9개월 동안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고 문제점을 고쳤다. 이후 수정된 프로그램은 성공적인 경영에 밑바탕이 되고 있다.

둘째,직원들과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우편업체인 영국 로열메일그룹의 앨런 라이튼 회장은 1600개 배달사무소를 방문해 직원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12주일마다 사무소 관리자 전체와 미팅을 한다. 직원들의 신뢰를 얻는 데는 고통 분담도 필수다. 러스 프라딘 휴잇어소시에이츠 CEO는 "일반 직원을 5% 해고하면 중간관리자와 경영진도 적어도 같은 비율만큼 옷을 벗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셋째,목표의 일관성과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 CEO들은 급변하는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수년간 익숙해져 있는 조직의 무기력함과 역량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때가 적지 않다. 수천 명의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특별한 집중과 목표의 일관성이 요구된다. 한두 가지 목표만을 정해서 4~5년 정도 힘을 쏟아야 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CEO들의 주요 메시지는 크고 복잡한 조직에서 직원들의 행동 방향을 잡아준다. 끝으로 경영진의 집합적인 리더십을 키워야 한다. 성공한 CEO들은 다른 사람들의 리더십 스타일을 자기의 단점을 보완하는 데 활용한다.

◆경영 비전은 회사 통합수단

CEO가 조직의 중심에서 이끌고 목표에 집중해도 직원들이 비전을 공유하지 않으면 회사 전체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다. 특히 조직이 복잡하고 다양화돼 있는 글로벌 기업의 CEO들은 직원들이 정서적으로 공유할 만한 비전을 세우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 같은 비전들은 공통적으로 회사가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 것을 돕고 △자랑스러워 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직원들이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기업의 각종 사회공헌 활동은 직원들이 활기차게 일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일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인재들을 끌어모으는 막강한 힘이 되기도 한다.

뛰어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기업에선 직원들이 만족감을 느끼기 어렵다. 성공한 CEO들은 실력 있는 조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재무적인 성과뿐 아니라 좋은 기업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모든 지표들을 염두에 둔다. 스웨덴 가구업체인 이케아는 CEO와 간부들도 회사 가치와 경영 원칙에 따라 일했는지에 대해 직원들로부터 상향식 평가를 받는다.

직원들은 또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때 회사 일에 열성을 보인다. 상당수의 성공한 CEO들은 그들이 직접 디자인한 능력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차세대 리더들을 가르치거나 멘토 역할을 담당한다. 또 조직에 어떤 인재들이 숨어 있는지 파악하고 발굴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동료와 일에서 일정거리 유지

대부분의 CEO들은 시장에서 경쟁 기업을 물리치고 직원들과 유대 관계를 맺는 것 등에서 보람을 느낀다. 성공한 CEO가 평범한 CEO와 구별되는 하나의 특징은 모든 일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회사 경영진과 가깝게 지내지만 인사문제에 있어 정실주의에 빠지지 않을 만큼 간격을 유지한다. 또 아무리 장시간 일을 하더라도 가족이나 지역사회 활동 등 회사 일 이외의 삶에도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매사에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을 수 있는 유머감각도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성공한 CEO들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일을 하느냐'에서 차이가 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