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슬프고

슬픈 아내를 보고 있는 내가 슬프고

그때 온 장모님 전화 받으며,그러엄 우린 잘 지내지,하는 아내 속의 아내는 더 슬프다



마술처럼 완벽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엄마가 아이를 버리고

직업이 아비를 버리고

병이 아픈 자를 버리고

마술사도 결국 토끼를 버리고(…)



온 세상을 슬픔으로 물들게 하려고

우는 아내가 식탁 모서리를 오래오래 쓰다듬고 있다

처음 보는 신기한 마술이다

-심보선 '아내의 마술' 부분


가난을 '관리'하는 것은 대개 아내의 몫이다. 적은 돈을 쪼개서 쓰는 데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 버는 것은 뻔한데 써야 할 곳은 얼마나 많은가. 늘 적자다. 그런데도 가계를 꾸려간다. 많은 망설임과 치욕과 절망이 따라다닐 것이다. 가족들은 그 비애를 알지만 애써 모른 체한다. 문제는 친정에서 온 안부전화를 받을 때다. "그러엄,우린 잘 지내지"라고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는 집안을 순식간에 슬픔으로 물들인다. 낡은 양말을 신고,떨이로 산 허름한 옷을 걸친 채 식탁 모서리를 쓰다듬으며 전화를 받는 아내를 망연히 바라보는 심정.그런 게 슬픔일까.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