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플로 칭찬의 신바람 일으켜야


"선(善)플이 달리는 속도가 악플(악성 댓글)보다 빨라지는 그날까지 계속 뛰어야지요."

'선플 달기'라는 인터넷 평화운동을 위해 1년여를 쉼없이 달려온 민병철 선플달기운동본부 공동대표(57)는 '그날까지의 완주'를 다짐했다.

힘든 기색도 없이 한술 더 떠 아이디어들을 쉼없이 쏟아냈다.

'선플을 주제로 한·미·일 영어말하기 대회를 열자' '선플의 날을 만들자' '선플 달기 게임을 개발해 학교 교육에 포함시키자'…."매일 아침 일어나면 선플만 생각한다"는 그의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믿기에 충분했다.

그의 말 마디마디에는 열정이 가득했고,이 열정은 '캠페인만으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날려 보냈다.

"러시아의 문인 고리키가 말하기를 욕이란 것은 말한 사람,전달한 사람,받는 사람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했어요. 선플은 정반대입니다. 최소한 세 명을 행복하게 해줍니다. 선플 운동을 하면서 계속 젊어지는 느낌이에요."

민 대표는 지난 20여년간 영어를 매개로 세계 곳곳의 인물들과 맺어온 인연을 빌려 하루에도 몇 통씩 선플을 알리는 메일을 보내고 있다.

첫 성과로 미국 LA 서드 스트리트 미들 스쿨(Third Street Middle School)이 '선플방'을 만들기로 약속했다.

일리노이주와 일본에서도 올해 구체적인 움직임이 나올 예정이다.

선플 운동이 지구촌 곳곳에 확산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다.

생활영어 전도사에서 시민운동가로 변신한 민 대표를 4일 늦은밤 서울 역삼동 민병철어학원 본사에서 만났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겠습니다.

"익명에 숨어 활개치는 악플은 소리없는 총알과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악플로 고통받는 이들을 생각하면 초단위라도 쪼개서 살아야지요. 선플 달기는 우리대에서 그칠 일이 결코 아닙니다. 후손들로부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덕분에 악플없는 세상에 살게 됐다'는 평가를 듣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선플 달기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있는지요.

"작년 초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이 악플 탓이란 얘기를 들었습니다. 심지어 고인이 된 이후에도 악플이 달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때마침 학기 시작 전(민 대표는 중앙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강의 내용을 고민하던 참이라 학생들에게 '선플 10개씩 달기'를 과제로 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요. 결과는 뜻밖이었습니다. 1주일 만에 570명의 학생이 5000여개의 선플을 달았고,학생들 스스로 칭찬과 격려의 말에 기뻐하더군요."

―공동대표 네 명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은 서초구청에서 운영하는 21세기 위원회를 통해 안 사이예요. 제가 위원장이고 고 의원이 위원으로 일했습니다. 영화배우 안성기씨와 탤런트 유동근씨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고요. 방송인 김제동씨는 아나운서로 일하는 우리 며느리가 소개해줬습니다."

―지난 6월 제주 중앙중학교에 처음 만든 '선플방'은 아이디어가 무척 참신합니다.

"영어교육에 관한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영어 배우기는 12,13세가 환갑 나이예요. 어릴 때 배울수록 쉽게 익히죠.선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 네티켓(네티즌들의 에티켓)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커서도 탈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학교마다 컴퓨터 실습실을 선플방으로 바꾸고,이곳에서 인성 교육을 정기적으로 시키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지요."

―우리의 인터넷 교육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시는지요.

"정부가 할 일이 태산입니다. 교과서는 컴퓨터 활용에 관한 이론으로만 가득차 있습니다. 선플방을 만들어도 교사들에게 혹시 '잡일'이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입니다. 정부가 선플방에서 인성 교육을 하는 교사들의 시간과 노력을 정식 업무로 인정해줘야 합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교육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어요. 인터넷으로 선플을 다는 게임을 개발해 이것을 교육 과정에 활용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네티켓과 관련해 '촛불시위' 게시글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 운동은 비정치적·비종교적 캠페인입니다. 전국 초·중·고교에 하나씩 선플방을 만들고,더 나아가 기업과 다른 나라에도 선플방을 설치하는 일에 매진하는 데만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캠페인으로 뭘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론도 있을 텐데요.

"안전벨트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안전벨트를 하라고 하면 '나 못믿냐?'고 쳐다보곤 했던 게 엊그제입니다. 안전벨트 착용이 정착한 데에는 벌점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강제한 것도 도움이 됐지만 그보다는 오랜 캠페인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해외에서도 선플 달기 반응이 좋다면서요.

"지난 4월 LA에 선플달기운동본부 지부를 만들 때 우연히 만난 LA 서드 스트리트 중학교의 수지 오라는 한인 교장이 최근 한국을 찾았습니다. 선플방 제안에 답하고,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저를 방문한 거죠.'자기 학교도 악플(cyber bullying)로 고생하던 차라 선플방을 꼭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리처드 오럼 노던일리노이대 교수는 '선플 에세이 & 영어말하기 대회'를 올 가을에 한국에서 열자는 제안을 하자 학생들을 데리고 참석하기로 했어요. 게다가 자신이 사는 지역의 중학교에도 선플방을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이것이 희망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기성 세대들은 사이버 폭력에 상대적으로 둔감해 보입니다.

"인터넷 폭력의 위력을 가늠하려면 직접 써봐야 합니다. 난 직원들과도 매일 문자로 연락합니다. 오늘도 직원 한 명한테 20통은 보냈을 거예요. (민 대표는 직접 기자에게 문자를 보내며 10대 못지 않은 '엄지족'임을 보여줬다) 인터넷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지요. 영어를 배우게 하려고 아이들을 외국에 자꾸 보내는데 이는 기성 세대들이 인터넷 미디어의 혜택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선플 운동이 경제적으로도 효과가 있을까요?

"신한은행이 조흥은행과 합병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불협화음이 꽤 있었던 모양이에요. 제가 신상훈 행장한테 직원들끼리 칭찬과 격려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 이름은 추임새 운동이었는데 그것도 일종의 선플 달기예요. 신한은행은 2년간 칭찬글이 6만여건 올라오면서 통합 갈등을 말끔히 씻어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사람은 신바람 민족입니다. 선플을 통해 서로 신명만 난다면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글=박동휘·민지혜/사진=김병언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