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길 <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

'2002 한ㆍ일 월드컵' 축구에서 한국팀은 4강 신화를 이뤘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며 체력강화 훈련을 계속했다.

당시 일부 스타 선수들이 TV 오락 프로에 나오는 걸 본 후 "축구 선수는 운동장에서 스타일 뿐"이라며 축구 이외의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축구에만 전념하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꽤 오래 전 일이다.

친구들끼리 저녁 먹는 자리에서 고스톱을 치다가 약간의 시비가 있었다.

한 친구가 나에게 교수이니까 정확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하기에 한마디 했더니 다른 친구 하는 말,"교수면 교수지 고스톱 판에서도 교수냐"고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고 즐긴 적이 있다.

축구 선수든 교수든 각기 서 있을 자리가 있다.

엊그제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촛불 데모 현장에서 "경찰에 끌려가 맞았다"고 주장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안 의원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를 벌이다 경찰 기동대 지휘관과 전경 등 3명을 폭행했다"고 반박했다.

진실 공방이 어떻든 문제는 국회의원이 국회를 외면하고 왜 시위 현장에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거기는 국회의원이 서 있을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위에 참가한 일부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겠다"고 했다지만 그런 살신성인(?) 정신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시민을 보호한다는 말 같지 않은 명분을 내세울 게 아니라 국회에서 문제를 풀 테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야 옳다.

서울의 도심은 매일 밤 해방구가 돼 있다.

쇠망치와 쇠파이프,경찰 버스를 쓰러뜨릴 밧줄을 준비하고 나온 사람들이 순수한 시민일 수 없다.

경찰도 경찰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의 젊은 전경들은 곳곳에서 시위대에 둘러싸여 발길질을 당한다.

방패와 헬멧을 빼앗긴 전경들이 그걸 돌려 달라며 애원까지 한다.

시위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며 경찰의 강경 진압을 탓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이나 일부 방송도 제정신이 아니다.

폭력 촛불시위와 그 촛불시위에 편승하는 세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부 의원은 시위대와 어울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른다.

"고생하시는 여러분 힘 내시라"고 시위대를 격려하는 전직 법무장관도 있다.

촛불 집회에 대해 "한국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한 전직 대통령도 있다.

무법ㆍ불법ㆍ탈법ㆍ폭력이 난무하는데 이걸 두고 직접 민주주의를 경험한다면 그런 민주주의는 누구를 위한,또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대의제(代議制)는 무엇이며 국회의원은 왜 필요한가.

국민의 대표자로 자처하는 이들이 광장에 나와 합법 정부의 퇴진을 부르짖으며 대의제와 법치를 흔드는 헌법 파괴 행위를 하는데도 국회의원이 이에 동조한다면 이미 국회의원 자격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촛불 민심에 편승,곁불이나 쬐려 하고 시위대에 아부하기까지 하는 작태를 보이려고 국회의원이 됐는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세상이다.

한국 경제에는 빨간 불이 켜진 지 오래다.

10년 전 외환위기 상황보다 더 나쁘다는 평가다.

그때는 국민들은 물론 여야 정치권도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했다.

2002년 거리를 메운 '붉은 악마들'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희망을 노래했다.

한국 경제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는데 지금 서울 거리에서는 촛불시위대가 밤을 지새우며 산업 현장은 파업으로 얼룩 지고 있다.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감독과 코치,선수들은 제각기 따로 놀고 있다.

'경제는 정치인들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진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