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 시인 >

암송하는 분들이 많으리라.책상 앞,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은 분들은 더 많으리라.'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수백만 독자가 읽은 시의 제목이다(시집 제목이기도 하다).저 시가 가슴을 치는 까닭은,우리 대부분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에는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우리는 지금의 우리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때,나는 몰랐다.

도보순례의 위력이 그렇게 크리라고는 그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타는 인간'에서 '걷는 인간'으로 살아가리라는 각오가 또 그렇게 빨리 무너지리라고는 그때 상상도 못했다.

2001년 바로 이맘 때,지리산생평평화연대가 주최한 지리산 팔백오십 리 도보순례에 참여했다.

실상사에서 출발해,지리산 외곽을 시계 방향으로 16일 동안 걸었다.

하루 평균 30㎞,시속 4㎞.실로 오랜만에 나는 몸으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몸으로 돌아갔던 몸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졌다.

거대도시로 귀환한 이후,걷는 능력이 급격하게 퇴화했기 때문이다.

대신,남원 실상사 공양간(식당) 배식대에 붙어 있던 게송(偈頌)은 지금도 선명하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보리(깨달음)를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

"

서울로 돌아오고 나서 시를 몇 편 썼다.

그 중 '지구의 가을'이란 시가 있다.

실상사 공양간 게송을 1연에 그대로 인용했는데,2연에서 다음과 같이 역전된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나는 두려워 헤아리지 못합니다/마음의 눈 크게 뜨면 뜰수록/이 눈부신 음식들/육신을 지탱하는 독으로 보입니다.

" 시는,지구가 굳이 인간을 편애할 까닭은 없으며,우주의 순환 원리가 내 몸에서 끊기고 있다는 발견에 이어,"나는 오래된 중금속입니다"라는 독백으로 끝난다.

광우병에 대한 우려가 가위 공황 수준이다.

인터넷에서는 쇠고기 협상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비판을 넘어,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서명 운동까지 번지고 있다.

도심에서 항의 집회를 갖는다는 소식도 들린다.

18대 총선이 역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을 때,전문가들이 쏟아냈던 분석들이 무색할 지경이다.

국민들은 현실 정치에 무심하지 않았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지금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때에 대한 판단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이에게 그때는 지난 총선이나 대선일 수도 있고,또 어떤 이에게는 그 이전 정권,또는 '잃어버린 10년' 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그때'는 좀 다르다.

그때는 우리가 농업을 포기하던 바로 그때일 수 있다.

우루과이라운드(UR)와 세계무역기구(WTO),국제통화기금(IMF)을 통과하던 그때.우리가 개발과 성장 이데올로기를 유일한 미래라고 합의하던 그때.그리고 그것을 무반성적으로 내면화하던 그때….우리는 너무나 많은 '그때'들을 지나온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식탁이 지구'라는 사실이다.

문학적 수사가 아니다.

우리의 식탁 위에 매일 지구가 올라온다.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하면 식량 자급률이 5%에 미치지 못하는 나라다.

중국에서,미국에서,유럽에서,남미에서 먹을 것을 수입하지 않으면 우리는 식탁을 차릴 수가 없다.

언젠가 혼자 중얼거린 적이 있다.

산업 문명,아니 석유 문명이 유턴하는 지점은 다름 아닌 우리의 식탁일 것이라고.요즘 나는 또 중얼거린다.

그런데 광우병 파동이라는 이 거대한 거부가 진정 유턴일까,후진일까.

아니면 우선멈춤에 불과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