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정명화씨(64·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사진)는 협연자를 더욱 빛나게 하는 음악가다.

자신의 테크닉도 뛰어나지만 함께 무대에 오른 사람의 연주를 묵직한 첼로 소리로 잘 받쳐준다.

최근의 실내악 협연에서도 그런 모습이 돋보인다.

하지만 팬들 입장에선 정명화가 주인공인 무대도 보고 싶어한다.

그런 무대가 5월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마련된다.알렉산더 드미트리예프가 지휘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로 러시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처음이다.

이날 그는 차이코프스키의 로코코 변주곡을 연주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정씨는 "러시아 작곡가의 음악을 러시아 오케스트라와 연주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며 "로코코 변주곡도 내가 직접 고른 작품"이라고 말했다.

'로코코 변주곡'은 1876년 차이코프스키가 친구이자 첼리스트였던 피첸하겐을 위해 만든 작품.워낙 변화무쌍해 연주자의 기교가 잘 발휘돼야 하는 곡이다.

그에게도 솔리스트의 욕심은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다른 악기와 견줄 수 없는 무게중심으로 전체 공연의 흐름까지 좌우하는 '첼로의 존재감'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체임버 공연에서 솔로 파트가 나오면 아주 신나죠.그런데 내가 서포팅(supporting)하는 부분이 나오면 더 신나요.

내 연주에 따라 전체 분위기가 달라지는 데 쾌감을 느끼니까요."

사실 그는 처음부터 첼로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성악,무용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재능을 보이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어머니의 권유로 첼로를 시작했다.

일곱남매에게 각기 다른 맞춤교육을 하고 싶었던 어머니의 안목으로 볼 때 그의 온화한 성격이 첼로와 잘 맞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첼로의 활로 첫음을 켜자마자 '아! 이건 내 목소리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래를 부를 때 내 호흡과 목소리를 첼로가 그대로 갖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후 미국 줄리아드음악학교를 졸업하고 피아티고르스키를 사사한 뒤,주빈메타 지휘의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협연(1969년),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 첼로부문 1위(1971년) 등 1세대 해외음악인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슬럼프가 있었다.

1966년 스승 피아티고르스키가 심사위원이었던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테러 위험이 있다며 제지해 수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도 했다.

이 뿐 아니라 50년이 넘는 프로 연주자의 길을 걸으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과 좌절도 많았다.

그는 이에 대해 "잘하기만 했다면 음악 인생이 무척 지루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깊이 파고들수록 넓어지는 음악 세계가 경이롭고,그래서 언제나 할 일이 있다는 것이 기쁘다는 것.그래서 오전 시간은 늘 연습과 공부,명상을 위해 비워둔다.

이번 공연이 끝난 뒤에도 지난해부터 계속해온 작은 규모의 실내악 연주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뒤늦게 관객과 연주자가 함께 호흡하는 분위기에 매료돼 '헤어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02)3471-6475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