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홍라희ㆍ아들 이재용씨 생애 첫 조사

1995년 11월8일 오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에 들어섰다.

삼성은 1938년 창업 이래 총수가 한번도 검찰에 소환된 적이 없는 유일한 기업이었지만 대검 중수부의 노태우씨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 때 대기업 오너가 대부분 검찰에 불려왔고 이 회장도 이를 피하지 못했다.

`삼성의 치욕'이라고 할 정도로 수치스러워했다던 그 때 이후에도 이 회장은 여러차례 검찰 소환설에 시달렸으나 수사당국과의 인연은 이것이 끝이었다.

매머드급 변호인단을 동원하고 치밀한 방어전략을 구사해 매번 고비를 넘겨온 것이다.

2003~2004년 대선자금 수사 때 대검 중수부가 삼성이 300억원이 넘는 채권과 현금 등을 한나라당에 전달한 사실을 밝혀내 이 회장의 출국금지설과 소환설 등이 나돌았으나 이학수 당시 구조조정본부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만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회장 모르게 집행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고 그 즈음 해외 체류하던 이 회장은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리자 귀국했다.

2005년 8월 서울중앙지검의 도청사건 수사 때 이 부회장과 홍석현 당시 주미 대사간 대화가 담긴 도청 테이프 내용에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삼성이 정치권에 자금을 제공하는 과정에 이 회장이 개입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 있어 참여연대가 고발한 이 회장의 소환설이 다시 돌았다.

같은 해 9월 민주노총이 삼성의 기아차 인수 로비 의혹까지 제기해 `이 회장 수사 불가피론'이 확산되자 다음 달 이 회장은 건강검진 등을 위해 미국행을 택했고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송환을 위한 국제 사법공조 가능성까지 시사해 파장이 일기도 했다.

불기소 처분으로 5개월 만인 2006년 2월 다리에 깁스를 한 채 휠체어를 타고 귀국한 이 회장은 "한국에 오니 참 좋네요.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서울중앙지검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의혹을 수사하면서 전ㆍ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한 뒤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자 이 회장은 또 `소환 임박설'에 시달려야 했다.

검찰은 피고발인 33명 중 이 회장만 빼고 모두 조사한 뒤 `이 회장 조사서'까지 준비하고 기다리다 2심 판결 역시 `유죄'가 나왔음에도 1심 판결과 법리해석이 상당히 달라 대법원 결정을 지켜보자며 이 회장 조사를 차일피일했었다.

이 와중에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 폭로로 특검이 출범했고 관련 사건이 모두 검찰 손을 떠났다.

따라서 13년간 검찰 조사를 피한 이 회장의 소환 여부는 특검 초기부터 초미의 관심사였고 장남 이재용씨와 부인 홍라희씨까지 생애 처음 조사를 받은 끝에 결국 이 회장도 4일 수사당국의 `두번째 부름'을 받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강의영 이한승 기자 keyke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