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생활고 때문에 급하게 일자리를 찾다 보니 기대에 못 미치는 직장만 다녔다고 호소하는 김모씨(42).학교에 다닐 땐 줄곧 개근했는데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1년을 못 버티고 회사를 여러 차례 옮겨 다녔다.

이렇다 보니 가장 오래 근무한 게 2년이 채 못 된다.

열심히 일해 봐야 회사에서 알아 주지도 않고 월급도 오르지 않아 자책감에 빠져 있다.

#일류 대학을 졸업한 이모씨(33)는 회사에서 하는 일이 별로 멋져 보이지 않고 창의적이지 않아 갑갑함을 느꼈다.

사수라는 직속 선배는 늘상 으름장을 놓고 압박했다.

회사가 군대인가.

지루한 서류 작업에다 회의 및 회식이 매일 이어지자 회사를 뛰쳐나와 사법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힘에 부쳐 공무원 시험을 고려 중이다.

이처럼 자신의 기대치와 역량에 비해 회사의 처우와 정체성 분위기 등이 부합하지 않아 이직이 잦은 직장인이 늘고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지난 1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명절 직후 상여금을 받거나 전직 구상을 마친 후 이직을 고려하는 사람의 비율이 65.9%에 달했다.

이에 앞서 작년 12월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직시 연봉이 인상된 경우는 50%였고 이들 중 연봉 인상액이 100만원 미만인 경우는 33.0%,100만~200만원인 경우가 25.1%를 차지했다.

높은 연봉이 이직의 주된 요인이 아니고 정신적인 문제가 많이 개입됐음을 말해 준다.

잦은 이직은 경력직으로 입사할 때 중요한 결격 사유가 된다.

'커리어'가 최근 기업 인사담당자 23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3.8%가 이직이 잦은 지원자를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한 직장에서 최소 3년10개월은 근무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달리 이직이 잦은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가 회사에서 저평가받고 있는 게 큰 이유다.

이직의 이유로 비전과 적성 등이 맞지 않음을 얘기하지만 실상은 자신에 대한 홀대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다음으로 과도한 업무량과 억압적인 직장 문화에 따른 직무 스트레스,소극적이거나 조직의 논리에 융화하지 못하는 성격을 꼽을 수 있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경력 3년 미만의 사회 초년생이 1년도 못 돼 여러 차례 직장을 옮기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자기 가치를 과대 평가하고 조직 논리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단순하고 지루한 업무에 염증을 느끼고 수직적인 명령하달식 근무 분위기에 적대감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과 교수는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면 스트레스도 줄고 비전도 찾을 수 있다는 막연한 인식이 잦은 이직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직을 줄이고 한 직장에서 적정 기간 근무하며 경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데는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하 교수는 "입사 후 1년간은 직장인의 화려한 면만 보지 말고 죽었다 생각하고 무의미한 일이라도 묵묵히 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자연스럽게 조직 논리를 배우고 대인 관계에서 융통성을 발휘하게 되면 회사에 무난하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윤 교수는 "스트레스는 나쁜 것이다.

직장만 바꾸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다는 식의 건강하지 못하고 왜곡된 인지의 틀을 바꿔야 한다"며 "이직이 잦은 사람 중에는 상사의 사소한 꾸지람조차 과도하게 일반화해 스스로를 비관하고 인생 패배자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직하는 직원이 속출하는 기업도 반성할 게 많다.

하 교수는 "기업의 간부들은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다'며 이직자를 비판하기 쉬우나 채용 방법과 인사 관리는 적정한지,조직 문화가 경직되지 않았는지 점검해 전면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젊은 층의 튀는 행동이 하찮아 보일지라도 칭찬하고 이면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그는 "잦은 이직이 우울증 불안증 성격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의 정신적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건 위험하다"며 "이직이 잦은 사람은 지식과 기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인간 관계를 맺고 스트레스를 이기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상습성 이직자들이 끈기 집중력 열정 창의성 등을 갖출 수 있도록 주위에서 따스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게 요구된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스트레스에 강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5L)

1.learn:새로운 것을 도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즐긴다

2.labor:자기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정열을 쏟는다

3.love:정서적 지원을 해주는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다

4.laugh:상황을 반전시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유머 감각을 갖춘다

5.let go: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일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에 효율적으로 최대의 에너지를 쏟는다.

출처:배리 그리프 전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