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알짜 신도시'인 판교의 민간 아파트 최종 분양이 정부의 엉뚱한 간섭으로 늦춰지고 있다.

2006년 3월부터 분양에 들어가 최대 35%의 공사 진척도를 보이고 있는 판교 신도시.

3일 기자가 찾은 동판교 A20-2블록은 첫삽도 뜨지 못한 채 토지구획정리 상태로 남아 있었다.

신구건설과 ㈜한성은 작년 6월 이 땅을 주택공사로부터 매입, 4개월 후인 10월께 948가구를 분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부 당국의 발목잡기로 분양공고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바로 옆 A20-1블록이 분양 이후 현재 10층 높이로 공사(진척률 30%)가 진행돼 내년 하반기 입주를 앞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임대아파트와 연립주택을 빼면 판교에서 공급하는 마지막 민간 아파트 단지인 A20-2블록의 분양이 4~5개월 늦어지자 시행사인 신구건설은 부도 위기에 몰리고 한성도 다른 사업을 못하고 있다.

두 회사는 땅값에 대한 이자 손실만 88억원에 이른다고 하소연했다.

이 단지에서 분양이 늦어지는 표면적인 이유는 블록을 대각선으로 관통하는 왕복 8차로 임시도로 때문.주공은 원래 땅을 팔면서 임시도로를 작년 10월까지 블록 밖으로 옮기기로 약속했었다.

이후 주공 측은 도로 이전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주공 측은 "동절기여서 공사를 중단했을 뿐 4월 초에 대체도로를 완공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체도로 공사 현장에는 중장비나 골재 등 공사용 자재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분양승인권을 가진 성남시는 "도로가 사업지를 관통하고 있다"는 이유로 분양승인 신청서를 반려하고 있다.

주공과 성남시가 핑퐁을 하며 분양을 지연시키는 진짜 이유는 바로 판교 신도시 주택공급 정책을 총괄하는 국토해양부가 압력을 넣어서다.

지난해 10월 당시 건설교통부는 성남시청과 주공 앞으로 "판교 신도시 잔여 물량이 산발적으로 분양되면 부동산 시장에 파장이 예상된다"며 "블록별 분양이 이뤄지지 않도록 분양 승인시 건교부와 사전협의를 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건교부는 판교 분양 시장이 과열되면 부동산 시장도 불안해질 수 있다는 염려에서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는 "판교신도시는 2006년 3월과 8월 두 차례 분양하면서 과열을 빚었었는데 새삼 부동산 과열을 염려해 분양을 늦추는 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국토부의 판교신도시 담당자는 이에 대해 "판교 분양은 성남시와 사업자 간의 문제라 건교부가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분양 지연에 따른 피해는 시행업체,실수요자 및 주변 단지 입주민들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신구건설 측은 "판교 분양만 늦춰지지 않았어도 최근 17억원을 막지 못해 1차부도 위기를 겪는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한성의 이원규 프로젝트팀 부장도 "판교 땅값이 평당 1600만원짜리이다 보니 신용한도를 꽉 채워서 은행 보증을 받았는데 분양이 꼬여 다른 사업을 진행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는 "분양이 늦어질수록 시행업체의 금융 비용이 눈덩이처럼 늘어나 분양가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년 가을에 입주할 예정인 인근 단지 아파트의 주민들도 상당 기간 공사장 분진과 소음에 시달려야 한다.

정호진 기자 hj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