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좁쌀영감'이 만들어 낸 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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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종 < 서울대 교수·정치학 >
숭례문이 있었던 자리가 갑자기 허전해졌다.엊그제까지 멀쩡했던 것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으니,숭례문은 신기루였나 보다.태안 주민들의 심정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어제까지 든든한 삶의 터전이었던 물바다가 하루아침에 기름바다가 됐으니,얼마나 황당했을까.인간이 빵으로만 산다면 2% 부족한 삶이다.예측성과 신뢰,믿음과 같은 것이 있어야 온전한 삶이 된다.언제,어디서 변을 당할지 모를 것 같은 불안감이 늘 엄습한다면 어떻게 평화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사회가 영락없이 그 꼴이다.국가가 국보 1호로 지정한 것이 보존되지 못하는 사회는 '위험사회'일 수밖에 없고 일찍이 토머스 홉스가 '믿음 없음',즉 'diffidence'라고 불렀던 자연상태의 재판(再版)이다.이런 삶의 불안감이 최소화되고 항심(恒心)이 생기려면,'믿음직스러운 사회'가 필수적이다.'믿음직스러운 사회'란 아침 6시에 문밖에서 부스럭 소리가 날 때 "아! 신문이 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다.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부는 제몫을 다했는가.정부가 아무리 잘하려 해도 잘할 수 없는 영역인데도 잘할 수 있다며,마치 인간사에 변덕스럽게 간섭했던 그리스신들처럼 온갖 규제와 간섭을 하는 오만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지난 5년간 좌파진보의 성향을 지닌 노무현 정부는 국가는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며 시장실패 현상을 침소봉대하고 교육과 경제분야에 과다개입했다.성과는 어땠나.정부가 논술문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내신반영 비율을 규제할 정도로 간섭이 심했지만,사교육비는 오히려 증가했고 '기러기 아빠'를 양산했다.경제도 마찬가지다.투기자들을 소탕하고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겠다며 징벌적 성격의 중과세정책을 쏟아냈지만,주택가격과 토지가격만 부추겼다.또 한국의 복지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며 많은 복지비를 지출했지만 양극화에 대한 불만은 더욱 더 심화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작 정부가 잘할 수 있는 곳에서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최근 들어와 정치ㆍ사회적 삶의 내용은 급격하게 변해 국가가 독점적이고 지배적으로 통제권을 행사해야 하는 분야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그럼에도 삶의 많은 영역에서 국가는 필요한 존재다.대표적인 게 법치의 영역이 아닐까.노 정부는 경제와 교육에 대해서는 '좁쌀영감'처럼 간섭했으나,집단적으로 법과 질서를 어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소 닭 보듯'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했다.그 결과 수시로 대형 노사분규가 일어났으며,주말마다 서울의 도심은 시위로 교통이 마비됐다.또 전교조 교사들이 정치적 이유로 집단휴가를 가도 속수무책이었다.이러한 '국가무능주의'에 대하여 무정부상태를 한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정부에서 국가가 절제할 부분은 절제하고 나서야 할 부분은 똑부러지게 나서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교육이나 경제에서는 사적 주체들에게 권한을 대폭 이양하고 사회영역에서는 법과 질서,원칙을 바로 잡아나가겠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우리는 믿음직스러운 국가를 원한다.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각 개인들은 어떤 신발이 자신의 발에 맞는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따라서 정부는 '권력만능주의'에 빠져 잘난 체하며 사적 영역에 간섭하지 말고 과감하게 권력과 권한을 사적 주체들에게 이양할 필요가 있다.반대로 그동안 눈치나 보며 불법적 집단행위를 다스리지 못했던 법과 원칙의 영역에서 '국가무능주의'를 척결할 때 믿음직스러운 국가와 사회의 모습이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숭례문이 있었던 자리가 갑자기 허전해졌다.엊그제까지 멀쩡했던 것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으니,숭례문은 신기루였나 보다.태안 주민들의 심정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어제까지 든든한 삶의 터전이었던 물바다가 하루아침에 기름바다가 됐으니,얼마나 황당했을까.인간이 빵으로만 산다면 2% 부족한 삶이다.예측성과 신뢰,믿음과 같은 것이 있어야 온전한 삶이 된다.언제,어디서 변을 당할지 모를 것 같은 불안감이 늘 엄습한다면 어떻게 평화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사회가 영락없이 그 꼴이다.국가가 국보 1호로 지정한 것이 보존되지 못하는 사회는 '위험사회'일 수밖에 없고 일찍이 토머스 홉스가 '믿음 없음',즉 'diffidence'라고 불렀던 자연상태의 재판(再版)이다.이런 삶의 불안감이 최소화되고 항심(恒心)이 생기려면,'믿음직스러운 사회'가 필수적이다.'믿음직스러운 사회'란 아침 6시에 문밖에서 부스럭 소리가 날 때 "아! 신문이 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다.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부는 제몫을 다했는가.정부가 아무리 잘하려 해도 잘할 수 없는 영역인데도 잘할 수 있다며,마치 인간사에 변덕스럽게 간섭했던 그리스신들처럼 온갖 규제와 간섭을 하는 오만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지난 5년간 좌파진보의 성향을 지닌 노무현 정부는 국가는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며 시장실패 현상을 침소봉대하고 교육과 경제분야에 과다개입했다.성과는 어땠나.정부가 논술문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내신반영 비율을 규제할 정도로 간섭이 심했지만,사교육비는 오히려 증가했고 '기러기 아빠'를 양산했다.경제도 마찬가지다.투기자들을 소탕하고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겠다며 징벌적 성격의 중과세정책을 쏟아냈지만,주택가격과 토지가격만 부추겼다.또 한국의 복지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며 많은 복지비를 지출했지만 양극화에 대한 불만은 더욱 더 심화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작 정부가 잘할 수 있는 곳에서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최근 들어와 정치ㆍ사회적 삶의 내용은 급격하게 변해 국가가 독점적이고 지배적으로 통제권을 행사해야 하는 분야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그럼에도 삶의 많은 영역에서 국가는 필요한 존재다.대표적인 게 법치의 영역이 아닐까.노 정부는 경제와 교육에 대해서는 '좁쌀영감'처럼 간섭했으나,집단적으로 법과 질서를 어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소 닭 보듯'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했다.그 결과 수시로 대형 노사분규가 일어났으며,주말마다 서울의 도심은 시위로 교통이 마비됐다.또 전교조 교사들이 정치적 이유로 집단휴가를 가도 속수무책이었다.이러한 '국가무능주의'에 대하여 무정부상태를 한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정부에서 국가가 절제할 부분은 절제하고 나서야 할 부분은 똑부러지게 나서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교육이나 경제에서는 사적 주체들에게 권한을 대폭 이양하고 사회영역에서는 법과 질서,원칙을 바로 잡아나가겠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우리는 믿음직스러운 국가를 원한다.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각 개인들은 어떤 신발이 자신의 발에 맞는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따라서 정부는 '권력만능주의'에 빠져 잘난 체하며 사적 영역에 간섭하지 말고 과감하게 권력과 권한을 사적 주체들에게 이양할 필요가 있다.반대로 그동안 눈치나 보며 불법적 집단행위를 다스리지 못했던 법과 원칙의 영역에서 '국가무능주의'를 척결할 때 믿음직스러운 국가와 사회의 모습이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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