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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수첩] 기술 빼앗긴 기업이 법정서 피해 숨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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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 기업에 적용되는 '보안감점제'
    이제 현실에 맞게 손질할 필요

    조철오 사회부 기자
    [취재수첩] 기술 빼앗긴 기업이 법정서 피해 숨기는 이유
    “기술 유출의 실질 피해자인 기업이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지난달 경남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재판부는 장보고함-Ⅲ 기술을 대만에 넘긴 전직 해군 중령인 방위산업 기업 대표 A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A씨는 2019~2020년 옛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기술자를 통해 불법 반출한 도면 등 핵심 기밀을 총 1억1000만달러에 대만에 팔아넘기려 했다.

    하지만 한화오션은 재판 과정에서 검찰 공소사실에 대해 “잘 모른다” “범죄와 관련 없다” 같은 답변으로 일관했다. 재판부가 “실체 규명에 어려움이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화오션이 법정에서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한국 잠수함의 핵심 기술이 어느 수준까지 해외로 넘어갔는지 실체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방산기업이 과거 기술 유출 의혹 사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배경에는 ‘방산 기술 보안감점제도’가 있다. 2014년 이 제도를 도입한 정부는 보안사고가 발생한 방산기업의 정부사업 입찰 평가 점수(100점 만점)를 3년간 3점 감점한다. ‘기술을 지키지 못한 책임’에 대한 일종의 벌점이다. 업계에선 “결과는 1점 이내에서 갈린다”며 “‘-3점’은 사실상 입찰 탈락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방산기업과 달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첨단 제조 기업은 범죄가 확인되면 내부 가담자를 즉각 색출하고 수사기관에 적극 협조한다. 세계 2위 수준의 폴리올레핀엘라스토머(POE) 기술을 유출당한 LG화학은 현재 진행 중인 2심 재판부에 “엄정히 처벌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유독 방산기업만 기술 유출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속내는 따로 있다. 한화오션이 대표적 사례다. 7조8000억원 규모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앞두고 HD현대중공업과 경쟁하는 한화오션은 과거의 보안사고가 부각되면 입찰 경쟁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실체 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배경이다.

    보안감점제가 한국 방산업 경쟁력에 부담이 되는 규제라는 지적도 있다. 보안망에서 허점이 발견될 경우 고치면 될 일인데, 방산기업은 그 사실 자체가 정부 입찰에서 감점 사유가 될까 봐 문제 제기를 꺼린다. 그 결과 기술 유출 사고가 발생해도 실태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덮고 가자’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기술 유출의 책임은 ‘훔친 쪽’에 물으면 될 일이다. 그와 별도로 피해를 본 쪽에 왜 빼앗겼느냐며 책임을 과하게 묻고 징벌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다. 보안감점제가 기업의 눈과 입을 닫게 하는 제도라면 이제 현실에 맞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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