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 1700선이 깨진 지 하루 만에 1600선마저 위태로워지자 시장에는 패닉에 가까운 공포감이 가득하다.

이러다간 지난 5년간 쌓아올린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까지 팽배한 상황이다.

더구나 이번 폭락장세가 전 세계적 동시다발성을 지니고 있는 데다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외부 변수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내부 문제라면 해결책이 보이겠지만 미국을 시발점으로 한 글로벌 경기 위축이라는 외생 변수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하락의 끝이 어디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한 펀드매니저는 "10년 만에 이렇게 예측하기 힘든 장은 처음 본다"고 털어놨다.

◆두달새 400포인트 이상 하락

증시는 2003년 초 지수 500선을 바닥으로 5년간 '짧은 조정 후 긴 상승'이라는 전형적인 대세상승 흐름을 보여왔다.

이 기간 지수 상승률은 300%에 달했고,대다수 투자자들이 짭짤한 수익을 맛보았다.

하지만 작년 11월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지수는 불과 두 달여 만에 400포인트 이상 가라앉았다.

특히 개인들이 투자한 개별 주식 중에서는 벌써 반토막난 종목이 즐비하다.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그동안 '빠지면 다시 오르겠지' 하는 막연한 낙관론이 지배했지만 지금이야말로 '추세 붕괴'(Crash)인지,아니면 또 한번의 '조정'(Correction)에 불과한 것인지 심각하게 판단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펀드매니저들 가운데서도 특히 시장을 오랫동안 경험한 1세대 매니저들 사이에선 비관론이 강하다.

박경민 한가람투자자문 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문제의 본질은 과거 저금리와 통화량 팽창정책에서 비롯된 과잉 유동성과 과소비,이에 따른 민간 부문의 과도한 부채에서 오는 부작용"이라며 "생각보다 어려운 장이 오래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따라서 "지금은 반등시마다 주식에 대한 비중을 계속 줄여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물론 긍정적인 시각이 아직은 대다수다.가장 큰 이유는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에도 펀더멘털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 때문이다.

이남우 메릴린치전무는 "연초에 아시아 각국을 돌아봤는데 기업들의 펀더멘털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탄탄해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신우 한국투신운용 부사장도 "최근 급락은 금융시장 불안을 과도하게 반영한 상태"라며 "우리 기업들의 실적 증가율이 제로라고 하더라도 지수 1600은 절대적으로 싼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외국인 투매가 낳은 최악의 수급

이번 폭락장의 주범은 외국인이다.

특히 외국인들은 거의 투매 수준에 가까운 매물을 쏟아내며 증시 수급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외국인이 팔아도 국내 기관이나 개인이 적극 저가 매수에 나서 방어했다.

하지만 지금은 워낙 공격적으로 가격을 낮추며 주식을 털어내는 바람에 국내 투자자들이 방어할 틈조차 주지 않고 있다.

외국인은 2005년부터 작년 말까지 3년간 40조원에 가까운 한국 주식을 팔았다.그것도 모자라 올 들어 불과 보름 동안에만 6조6806억원 어치를 추가로 순매도하고 있다.

이남우 전무는 "대부분의 외국인 자금은 과거 지수 1000포인트 정도부터 매수한 까닭에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른 환차익까지 감안하면 평균적으로 2배 이상씩 수익을 남겼다"며 "글로벌 증시가 불안한 상황에서 수익을 많이 남긴 한국 주식부터 파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최근 외국인의 투매에 가까운 '셀 코리아'가 헤지펀드들이 주도한 작품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