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에 이미 승부 갈려"

"남들이 대한통운의 '리비아 리스크'를 걱정할 때 우리는 그것이 가져다 줄 엄청난 기회를 봤습니다.그런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고 생각해요."

대우건설에 이어 대한통운까지 인수하며 M&A(인수ㆍ합병) 연승 기록을 세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그가 최근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한진 STX 현대중공업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국내 최대 육상물류업체인 대한통운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숨겨진 비화를 소개했다.

박 회장은 대한통운을 인수할 수 있었던 비결을 모두가 우려했던 '리비아 리스크'에서 찾았다고 설명했다.

대한통운과 리비아 대수로청(GMRA)이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세운 합작사인 ANC(Al Nahr Company)의 지분 25%를 작년 말 대우건설을 앞세워 인수한 게 '결정적 승인'이 됐다는 것.

대한통운과 리비아 대수로청(GMRA)이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세운 합작사인 ANC(Al Nahr Company)의 지분 25%를 작년 말 100여억원에 인수한 게 '결정적 승인'이 됐다는 것.이 100여억원의 선(先)투자가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2000억원이 넘는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박 회장(사진)은 "대한통운의 유일한 '아킬레스 건'인 리비아 리스크를 해소해줄 수 있는 업체가 인수전에서 유리한 고지에 선다는 판단에 따라 ANC 지분을 확보한 것"이라며 "ANC 지분 확보는 대우건설이 직접 대수로 사업에 뛰어든다는 의미인 만큼 '금호아시아나가 인수하면 리비아 리스크는 말끔히 해결된다'고 법원도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한통운을 인수하기 위한 박 회장의 치밀한 사전 준비작업은 지난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오남수 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 등 수뇌부를 대동하고 리비아를 방문,현지 대수로청 장관을 만나 "대우건설이 ANC 지분 25%를 인수하면 어떻겠느냐"고 '깜짝 제안'을 한 것.ANC를 만든 주체인 GMRA(지분율 75%)와 대한통운(25%) 모두 '건설 문외한'인 만큼 탁월한 시공능력을 갖춘 '원군'이 절실할 것이란 점을 파고든 것이었다.대우건설은 30여년 전 리비아에 진출해 지금까지 100억달러에 달하는 각종 인프라 공사를 수행한 만큼 대수로 공사 파트너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박 회장의 제의에 리비아 대수로청 장관이 반색한 건 당연한 일.'몸이 단' 리비아 측은 GMRA의 지분을 매각할 때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 대한통운 측을 설득해 대우건설이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거들기까지 했다.서울중앙지법 역시 '리비아 리스크 해결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대우건설이 ANC 지분을 인수하면 대한통운의 '골칫거리'인 리비아 대수로 공사 완공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어서다.결국 대우건설은 지난해 말 100억원이 조금 넘는 가격에 GMRA로부터 지분 25%를 인수키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오남수 사장은 "금호아시아나가 인수하면 대우건설 덕분에 대한통운은 대수로 공사에서 발을 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법원도 이 점을 높이 평가했다"며 "결과적으로 100억여원을 들여 ANC 지분을 인수한 게 대한통운까지 안겨다 준 셈"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의 ANC 지분 인수 효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금호아시아나가 ANC 지분의 절반(대한통운 보유지분 25% 포함)을 갖게 됨에 따라 60억달러에 달하는 대수로 잔여 공사는 물론 리비아 정부가 발주하는 각종 공사도 따낼 수 있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오 사장은 "리비아에 대한 미국의 제재조치가 풀리면서 각종 공사가 활발히 진행되는 만큼 금호아시아나의 리비아 사업도 크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 리비아 대수로 공사란

리비아 북부 지중해 연안 지역을 농경지로 만들기 위해 동남부 및 서남부 사막 지대의 지하 600m 지점에 매장된 지하수 100조t을 송수관을 통해 공급하는 사업.

모두 400억달러가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송수관 길이만 5524㎞에 달한다.5단계 공사중 현재 1~2단계는 사실상 마무리됐고,3단계 공사는 진행 중이다.동아건설이 1983년 첫삽을 뜰 때부터 공사를 주도했으나 2000년 파산선고를 받자 연대보증을 섰던 대한통운이 사실상 사업을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