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하(1918~)작 “여인의 뒷모습(30호, 1980년작)”이 1월16일 포털아트(www.porart.com)에서 열린 인터넷 미술품 경매에서 인터넷 경매사상 최고가인 1억7천1백만원에 낙찰되었다.

이는 지난해 12월12일에 김종하 작 “숲속의 환상(50호)”가 세운 인터넷 경매사상 최고 낙찰가 1억1천만원, 1월9일에 김종하 작 “아름다운 욕망(30호)”가 세운 인터넷 경매사상 최고 낙찰가 1억2천1백만원이란 대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김화백은 1932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 15세 나이로 최연소 입선, ‘신동’으로 평가받았다. 그 해 청운의 꿈을 품고 일본으로 단신으로 건너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와바다 미술학교(야간)와 동경제국미술학교를 졸업했다. 김화백은 동경제국미술학교 졸업 당시 최우수상을 수상해 일제 강점기였던 그 시절 일본에서도 인기있는 화가로 통했다.

김화백은 1956년 3월 미국인 마담 스마망을 도와 서울의 반도호텔(현 웨스틴조선호텔)에 최초의 상설화랑인 반도화랑을 만들었고, 개관 초대전으로 당시 자주 만나던 박수근화백과 함께 ‘김종하, 박수근 2인전’을 열었다. 당시 저명인사였던 김화백과 달리 박수근화백은 강원도 출신에 초등학교 졸업 화가였다. 지금도 같겠지만 당시 유명화가가 초등학교 졸업 화가와의 2인전은 파격적으로 김종하화백이 박수근화백을 대우한 것으로, 박수근화백이 미술품 애호가들에게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알릴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김종하화백은 “55년, 56년 초까지 반도호텔을 이용한 한국 화가는 없었고, 유일하게 반도호텔을 이용하였다.

당시 유명하다고 한 화가들도 전부 인사동이나 대포집에서 만났다. 그리고 56년말에 마담 스마망은 미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이때 반도화랑을 당시 도상봉 선생이 받아서 운영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화백은 1956년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프랑스 ACADEMI DE GRANDE CHAUMIERE(1959년 졸)에서 수학했다.

프랑스 유학 시절 미술을 공부하는 틈틈이 유럽 각지를 돌며 유럽의 다양한 미술유파를 연구. 분석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미술세계를 완성했다.

198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루벤스 훈장을 받았으며 파리 보자르드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2002년엔 우리 정부로부터 생존 화가에게 수훈한 최고의 훈장인 ‘은관 문화훈장’을 받았고, 예술원상도 수상했다.

김범훈 포털아트 대표는 “은둔의 화가 정도로만 알려졌던 김종하 선생님이 소장한 대표작들이 모두 전시되고, 지난해 말에 열린 전시회와 ‘화가와의 만남’ 등을 통해 일반 미술가들에게 알려지면서, 역대 최고의 화가이자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온 유일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는 김종하 선생님의 작품을 한 점이라도 확보하려는 애호가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터넷 사상 최고가가 계속 갱신되고 있다.”며 “포털아트 열린 인터넷 경매 방식이 연장이 없는 경매 방식이라 1억7천1백만원에 낙찰되었지, 만약 연장을 거듭하는 경매방식이었다면 ‘여인의 뒷모습’의 낙찰가격은 2억원을 훨씬 초과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2억원 이상 적립하고 경매에 참여한 분들이 몇 분 계시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한편, 김화백의 초대전인 ‘아! 김종하’ 전은 막을 내릴 예정이었으나 인터넷 경매 사상 호당 최고가, 인터넷 경매 사상 경매 최고가가 계속 갱신됨에 따라 기간이 연장돼 오는 31일까지 서울 역삼동 포털아트 2층 전시실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다.

또한, 19일 <포털아트에서 작품설명도 듣고, 작품 감상하면서 무료뷔페 외식하는 날> 행사에 김종하화백이 참석, 미술품 애호가 분들에게 못다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김종하 화백이 포털아트를 방문하는 경우, 통상 200여명의 미술품 애호가들이 참석,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디지털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