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특별수사팀이 털어 놓은 수사 `뒷담화'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및 회삿돈 횡령 등의 혐의로 지난 5일 구속기소된 김경준 전 BBK투자자문 대표가 수사 과정에서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제공받는 등 검찰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또 한국에 들어와 수사를 받는 동안 미국에 있는 딸이 무척 보고싶다며 눈물을 흘려 희대의 주가조작 사건 피의자가 아닌 평범한 아버지로서의 면모도 보였다고 수사팀 관계자는 7일 전했다.


◇ 피자, 삼겹살에 초밥까지…`VIP급 피의자'

송환 후 구속시한인 20일 안에 만족할 만한 수사성과를 내 놓아야 할 처지에 놓였던 검찰은 피의자로부터 최대한의 수사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김씨에게 다른 피의자와는 달리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했다.

김씨는 피자, 초밥 등은 물론 심지어 삼겹살까지 먹고 싶은 음식을 맘껏 제공받았고 일부 배달되지 않는 음식의 경우 수사팀 관계자가 직접 `공수'를 하는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수사팀은 김씨에게 수갑을 채우지 않았고 변호인, 가족과의 접견은 물론 에리카김 등 미국에 있는 가족들과의 통화도 제한 없이 허용했다.

덕분에 김씨는 어머니와 장모 등 한국에 있는 가족과 검찰청사에서 9번이나 특별면회를 했으며 검사실에 놓인 전화기를 통해 미국에 있는 누나 에리카김, 아내 이보라씨와도 수사로 전화통화를 했다.

하지만 김씨는 한국 검사들이 자신의 영어를 전부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약점을 의식한 듯 한국어로만 전화 통화를 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자꾸 영어를 섞어쓰는가 하면 허락도 받지 않고 제집 전화기 쓰듯이 수화기를 집어드는 일이 잦아 수사팀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 "딸 보고 싶어 미치겠다" 눈물

김씨는 수사를 받는 동안 비교적 여유 있는 태도로 일관했지만 미국에 있는 가족들 얘기가 나올 때면 자주 눈물을 흘렸다.

특히 김씨는 "미국 구치소에 있을 땐 딸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면회했는데 한국에 와서는 딸을 보지 못하니 미칠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리는 평범한 부정(父情)을 보여 수사팀 관계자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기도 했다.

김씨는 자신이 재산 중 상당액인 1천530만 달러를 딸 알렉산드리아의 이름으로 스위스 은행에 예치해 놓을 정도로 딸을 끔찍이 아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김씨는 검찰이 에리카김과 이보라씨의 범죄 연루 의혹을 캐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내가 잘못을 했으면 했지 왜 누나와 아내까지 그러느냐"며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가족들을 극도로 보호하려는 태도를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 "미국에선 죄 안 되는데…"

김씨는 자신의 혐의 중 상당 부분이 "미국에서는 죄가 안 되는 건데 왜 한국에서는 문제 삼냐"며 검찰에 항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혐의와 관련해 김씨는 "크로스 트레이딩을 한 건데 이건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죄가 안 된다 그런데 왜 한국 검찰은 왜 이걸 물어보냐"고 오히려 검찰에 따져 물었다.

이와 관련해 오재원 변호사는 6일 기자회견에서 "김씨는 자신이 주식 트레이드를 한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게 주가조작의 뜻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말하는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 미국에 있던 시절부터 이 후보와의 이면계약서 공개를 공언해 왔던 김씨는 한국에 들어오면서 `달랑' 이면계약서 사본만을 들고 와 검찰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왜 중요한 원본 대신 사본을 들고 왔냐"는 검찰의 질문에 김씨는 "미국에서는 사본만 내도 되는데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검찰이 확인해 본 결과 미국에서는 재판 도중 원본 대신 사본을 제출해도 증거 능력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미국은 `신뢰사회'로 문서위조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중대범죄로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수사팀 관계자는 전했다.

김씨는 또 이 후보와의 연루 의혹과 관련해서는 "엠비(이 후보)가 법률상 BBK 지분은 없지만 마음상의 지분은 있다"는 애매한 말로 수사진의 머릿속을 알쏭달쏭하게 만들기도 했다.


◇ 래리롱 MP3파일 듣고 무너진 김경준

검찰이 이면계약서가 옵셔널벤처스 사무실에 없던 잉크젯 프린터를 이용해 작성됐다는 등의 물증을 속속 들이대도 착착 준비된 변명을 내 놓던 김씨가 급격히 무너진 건 친구 래리 롱의 육성을 직접 듣고부터다.

김씨는 미국 로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유명 생명과학 벤처투자사인 AM파파스 LLC의 투자담당 이사이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동문인 래리 롱을 사기 행각에 이용했다.

친구인 래리 롱을 한국에 불러 이 후보와 김백준씨와의 만남을 주선한 뒤 김씨는 AM파파스 LLC의 `짝퉁 유령회사'인 AM파파스 INC를 에리카김의 LA 사무실을 주소로 해 설립한다.

김백준씨는 래리 롱과 헤어진 후 실제 AM파파스라는 회사가 있는지 인터넷 검색까지 해 보았는데 튼실한 회사로 보이자 이후 김씨의 말을 믿게 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중국계 미국인인 래리 롱의 출입국 기록을 뒤진 뒤 천신만고 끝에 현재 중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그와의 전화 통화에 성공했다.

수사결과 발표를 불과 2-3일 앞두고 통화 내용을 녹음한 MP3파일을 `래리 롱이 누구에요'라며 시치미를 떼는 김씨에게 들려주자 당혹한 김씨의 얼굴이 새파래졌다고 한다.

이후 김씨는 태도를 바꿔 자신의 혐의를 자백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setuz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