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와 삼성그룹이 각각 삼성의 불법 비자금 조성, 검찰 간부 떡값 제공 등에 대한 폭로와 반박성 해명을 내놓으며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어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지, 이들 의혹이 제대로 풀릴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검찰뿐 아니라 재경부나 국세청도 관리했다" "차명 비자금을 가진 임원 명단도 일부 갖고 있다"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까지 로비 지시를 받았다" 등 김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 중 어느 하나라도 폭발력을 지니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측은 검찰 등 사법당국에 대한 고소나 고발을 자제한 채 언론을 통해 폭로하거나, 이에 대응하는 방식을 취해 언론을 통한 공방을 벌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로서는 양측의 주장만으로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며 검찰 수사나 구체적인 증거 제시 등 삼성이나 김 변호사의 추가 조치가 있어야만 진실이 가려질 수 있을 전망이다.

양측은 상대방에 대한 법적 대응을 자제한 채 당분간 상황과 여론의 추이를 주시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관측된다.

◇ '관리의 삼성'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일 = 삼성그룹의 핵심조직인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에서 법무팀장을 지낸 변호사가 삼성에 대해 비리와 부정 의혹을 폭로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시스템 관리는 물론 인맥 관리가 철저한 삼성에서, 그것도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구조본에서 핵심 보직 중의 하나인 법무팀장을 지낸 인물이 '친정'을 향해 비수를 겨누게 할 만큼 삼성이 허술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삼성은 김 변호사가 퇴사 후 법무법인에서 힘겹게 일하면서 비정상적인 정신상태가 됐거나 가정사 등 어려운 문제 때문에 일종의 협박을 가하고 있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김 변호사는 재벌이 사법, 국가 기관을 오염시켜서는 안된다는 믿음에서 양심선언을 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양측의 주장에는 모두 허점이 없지 않아 보인다.

삼성이 구조본 법무팀장(전무급)까지 지낸 핵심인물에 대해 정신이상자 취급을 하는 것이 그 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김 변호사 역시 퇴직후 3년 동안 퇴직 임원에게 지급하는 고문료 명목으로 월 2천200만원에 달하는 거액을 꼬박꼬박 받아오다 지난 9월 계약기간 만료로 고문료 지급이 중단되자 갑자기 한달여만에 양심선언을 결심했다는 사실이 진실성을 되묻게 한다.

◇ 양측 법적 대응은 자제 = 삼성이나 김변호사는 언론을 통해 개인적인 생활사까지 언급하는 등 극단적인 폭로 공방을 벌이면서도 정작 사법당국 고소.고발 등 법적 대응은 하지 않고 있다.

삼성은 김 변호사가 지난달 29일 '차명계좌를 통한 삼성의 비자금 관리' 의혹을 제기하자 해당 자금의 비자금 여부 등 진상은 구체적인 입출금 내역 조사 등을 통해 쉽게 확인 가능하다면서도 아직까지 이 계좌의 내역이나 자금관리자, 실제 주인 등을 밝히지 않고 있으며 김 변호사에 대해 법적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삼성이 김 변호사를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사법당국에 고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이번 폭로가 검찰의 수사로 연결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떤 이유로든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면 삼성은 수사 자체에 대한 부담이 클 뿐 아니라 기업 이미지가 훼손될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삼성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발행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고, 김 변호사의 주장이 전략기획실장인 이학수 부회장이 사법처리 당한 바 있는 2003년 대선자금을 또다시 쟁점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런만큼 삼성은 여론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김 변호사의 폭로가 검찰 수사로 이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 분위기다.

김 변호사 역시 검찰 수사를 촉구할 뿐 삼성을 고소.고발하지 않고 있으며 자신 명의의 차명계좌 외에는 자신의 주장과 관련해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김 변호사는 5일 기자회견에서 양심선언을 하게 된 심경을 토로했으나 그동안 예고했던 '검찰 떡값 명단',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재산형성과정, 에버랜드 CB사건 증거 조작, 2002년 대선 비자금이 이건희 회장 개인돈이라는 주장 등에 관해 명쾌한 입증 자료를 내놓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