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탈리아 섬유중심지 '프라토'를 가다‥'패스트 패션'은 이미 중국인이 장악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A1'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300㎞쯤 가다 보면 유럽 섬유산업의 중심지인 '프라토(Prato)' 이정표가 나타난다.

중세 시대부터 직물 공업이 발달해 '이탈리아의 맨체스터'로 일컬어진 이 소도시에는 '마스코로토(Mascolotto)'라 불리는 산업 단지가 두 곳 있다.

프라토 사람들이 편의상 '2번 마스코로토'라 부르는 지역에 들어서자 알파벳과 한자가 혼재된 간판이 달린 창고형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이들 간판에는 공통적으로 '프론토 모다(Pronto Moda)'란 글자가 쓰여져 있다.

'프론토 모다'는 유행에 맞춰 수시로 싼 값에 내놓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과 같은 의미의 이탈리아어.알파벳은 의류 브랜드를 뜻하고 한자는 이 건물이 중국인 소유라는 것을 암시한다.

건물 내부에는 여성 정장이나 양복,아동복들이 빽빽하게 진열돼 있고 중국인들이 의류를 담은 박스를 들고 분주히 오간다.

프라토 상공회의소에서 외국계 기업을 담당하는 실비아 감비씨는 "1980년대만 해도 이 곳은 직물공장 밀집 지역이었다"며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인들이 공장을 인수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프론토 모다' 유통 단지로 완전히 변신했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이 프라토를 기반으로 유럽 '프론토 모다'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가고 있다.

[르포] 이탈리아 섬유중심지 '프라토'를 가다‥'패스트 패션'은 이미 중국인이 장악
이 지역 공장 근로자 출신 중국인 사업가나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는 '다국적' 중국인들이 중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해 만드는 중·저가 의류들이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달고 '2번 마스코로토'에서 독일 프랑스 등 전 유럽으로 팔려 나간다.

감비씨는 "중국인들은 중국에서 사온 값싼 원단으로 고급 패션잡지나 밀라노.파리 패션쇼 등에 선보인 의류들을 빠르게 모방해 한 달 간격으로 신제품을 값싸게 내놓는다"고 설명했다.

밀라노무역관의 정윤서 과장은 "프라토 '프론토 모다' 의류들은 밀라노에서 여성 정장이 30~50유로(약 4만~6만원),와이셔츠는 20유로(2만6000원) 정도에 판매된다"고 귀띔했다.

프라토에 거주하는 중국인은 2만5000여명.전체 인구(18만명)의 15%가량을 차지한다.

규모 면에서는 유럽에서 파리에 이어 두 번째로 크고 구성 비율 면에서는 단연 1위다.

프라토의 의류.섬유 관련 중국 기업 수는 1992년 212개에서 2006년 2309개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직물과 원사를 포함한 프라토 전체 섬유.의류기업(약 9000개)의 25% 정도가 중국 기업이다.

이들은 초기에 가내 수공업 형태로 이탈리아 하도급 업자들이 가져다 주는 일감을 소화했다.

2000년대 들어 유럽에서 '프론토 모다'가 대중화되면서 이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2001년 50개 정도였던 중국계 '프론토 모다' 회사는 최근 400개까지 늘어났다.

프라토는 중국인들이 만드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뿐 아니라 '메이드 인 차이나' 패션 상품의 유럽 공급 기지로도 부상하고 있다.

지난 5월 '카를라'란 브랜드로 '2번 마스코로토'에 입성한 중국인 수출입 업자 모제스 린씨(32)는 "파리에서 디자인하고 광저우에서 만든 여성 의류를 프라토에서 판매한다"며 "5개월 만에 매출이 100만유로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프라토(이탈리아)=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