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 <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 kris.park@hewitt.com >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보고 이해하라는 뜻인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여러 사람과 부대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 속에서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한 개인은 좋든 싫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부여받는다.

자녀들로부터는 아빠와 엄마,부모님으로부터는 아들과 딸,부부 간에 남편과 아내,직장에서 상사와 부하,학교에서 선·후배,사제지간 등 수없이 많은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인간관계 속에서 각기 다른 역할과 위치에서 살아가는데 장삼이사(張三李四)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항상 궂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닌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교차 속에서 살게 된다.

이때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기쁜 일이 있을 때 같이 기뻐해주고 슬픈 일이 있을 때 같이 슬퍼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화나는 일이 생기거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들 때 잠깐 분한 마음을 멀리 놓아둔 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는 억울한 일을 하소연하고자 찾는 사람들이 많다.

행정기관의 잘못으로 부당하게 피해를 본 사람에게는 시정권고를 통해 구제를 도와주고,그렇지 않은 경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한다.

시정권고나 이해설득으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요즘은 조정 및 합의를 통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조정과 합의를 통한 문제 해결의 이면에는 역지사지가 작용하고 있다.

조정회의를 열면 행정기관과 민원인 쌍방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데 자연스럽게 서로의 입장을 설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게 된다.

이때 충분히 서로 간의 입장을 이해하게 한 다음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어떠했을까를 설득하다보면 차츰 문제 해결의 가닥이 잡힌다.

역지사지의 마음을 통해 난마처럼 얽힌 문제가 해결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요즘 서점가에서 '경청'이나 '배려'등 인생철학서가 인기를 끌고 있는 데 이 또한 역지사지를 바탕에 둔 것이라 볼 수 있다.

바쁜 현대 생활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입장만 고수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좋은 그림에는 여백의 아름다움이 있듯 우리 삶에도 역지사지의 여유가 깃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