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발포령에 일부 군 고위층 항명 움직임

미얀마군이 승려와 시민들의 반(反) 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하는 과정에서 군정 내부 고위층간에 내홍이 빚어졌다고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 최신호가 8일 보도했다.

일부 군 고위층이 총구를 시민과 승려에게 돌리는 것에 불만을 품고 비밀리에 항명을 계획했으며 심지어 군정 서열 2위의 마웅 아예 장군이 아웅산 수치 여사와 몰래 면담을 가지려 했다는 소문도 흘러나오고 있다.

아주주간에 따르면 군정 최고지도자인 탄 슈웨 장군이 시위 참가자가 10만명을 넘어서자 긴급 장성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일부 군 고위층이 강경진압에 반대하고 나섰다.

슈웨 장군은 여기에서 강경 진압을 주장했으나 할 테이 윈 양곤지구 사령관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동북지방을 맡고 있는 라시오 수비군 및 서북지방을 담당한 모니와 수비군 사령관 역시 유혈진압 방침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군 병력의 동원을 중지하고 시간적 여유를 두는 한편 시위대에 온건한 방법으로 대처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슈웨 장군을 비롯한 다른 수뇌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슈웨 장군은 자신이 후계자로 지명한 군정 서열 3위의 투라 슈웨 만 참모총장에게 진압작전 총지휘를 맡겼다.

군정의 진압결정에 따라 지난달 24일 22사단 소속 경보병이 양곤 시내로 진주, 다음날부터 터미널, 절 등 시내 주요 지점에 배치돼 시위를 통제하며 진압에 나서기 시작했다.

중부 및 동남 지역의 군 부대가 추가로 증원된 이후 군정은 사정을 두지 않고 시민.승려들에 대한 진압작전을 폈다.

양곤지구 사령관은 끝까지 군인들의 시위대 발포를 반대하면서 가택연금됐다는 소식도 흘러나왔다.

만달레이에 주둔한 33보병사단도 시위대에 동정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군정은 시위가 거세지자 중국과 인접한 북부 및 중부 지방에선 대규모 군중을 동원, 군사정부를 지지하는 어용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번 진압작전의 지휘를 맡은 투라(60) 대장은 1999년 카렌족 반군 소탕에서 공적을 세우며 2001년 미얀마 국방부로 옮겼다 2003년 일약 대장으로 승진하면서 삼군 참모총장이라는 군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
74세의 슈웨 장군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최측근으로 특유의 친화력으로 군 고위층의 마음을 샀으며 심지어 마웅(70) 장군과도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92년 슈웨 장군 체제의 군정이 들어선 이후 마웅 장군은 군정에 신진인사를 수혈, 개혁을 꾀했으나 슈웨 장군 등 원로파의 반대에 부딪힌 이후 지속적으로 권력에서 밀려나고 있다.

슈웨 장군은 특히 마웅 장군의 병권을 투라 장군에게 넘긴데 그치지 않고 마웅 장군이 장악하고 있던 무역이사회도 손을 떼게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최근 태국 방콕에서 열린 미얀마 정세 관련 세미나에선 이번 시위의 배후에는 숙청당한 온건파 킨 윤 총리의 지지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슈웨 장군은 정치 민주화 주장을 펴던 킨 전 총리와 계속 의견이 맞지 않자 2004년 10월 부패 혐의를 뒤집어 씌워 44년 징역형을 선고하고 축출한 바 있다.

슈웨 장군이 당시 양곤에서 네이피도로 수도를 옮기기로 한 결정도 양곤에 킨 전 총리의 지지세력이 상당수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홍콩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joo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