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7일부터 청약가점제 대상 아파트의 분양이 시작되면서 청약자들이 새 제도에 적응하지 못해 초기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당첨 부적격자'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가점제 도입으로 청약방식이 복잡해져 종전 100% 추첨방식일 때보다 부적격 당첨자 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건설사들은 앞으로 무주택 세대주, 주택소유 여부 외에 가점제 점수를 잘못 기입했는 지도 직접 가려내야 해 관련 민원이 쇄도할 전망이다.

◇ 건설사 '부적격자 양산' 우려 = 19일 건설업계는 청약가점제 시행으로 당첨 부적격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지난 17일 청약을 시작한 인천 논현 현대힐스테이트와 양주 고읍 신도브래뉴 아파트 모델하우스와 은행, 건설교통부 등에는 가점제 점수를 계산하지 못한 청약자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부양가족이 복잡하거나 이혼경력이 있는 경우, 과거에 집을 소유한 경우 등은 상담을 해주는 직원들도 점수 계산이 힘들 정도"라며 "특히 인터넷 등 정보 접근이 힘든 계층은 점수를 잘못 계산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청약 업무도 늘었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종전까지 금융결제원 등을 통해 당첨자가 발표되면 행정자치부와 건설교통부 전산망을 통해 세대주 여부, 재당첨 제한, 주택소유 여부 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건설사에 통보되고, 건설사는 이들을 대상으로 소명 기간내 최종 부적격자 여부를 가렸다.

하지만 앞으로는 건설사가 부양가족 수와 무주택 기간 등 가점제 점수를 제대로 기입했는 지도 추가로 따져봐야 해 당첨자와 부적격자 판명이 또 다른 '일거리'가 됐다.

A건설 관계자는 "단지 규모가 큰 아파트에서 가점제 점수를 잘못 입력했는 지 가려내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특히 부양가족이나 무주택 기간을 셀 때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고, 건교부 유권해석도 거쳐야 해 적잖은 시간과 인력, 노력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한화건설이 7월초 인천 논현지구에 분양한 에크메트로의 경우 4천226가구의 대단지다 보니 당첨자 발표후 부적격자(160여명)를 찾아내 이달초 이 물량을 일반에 공개 분양할 때까지 한달 반 이상 소요됐다.

B건설 관계자는 "부양가족이나 무주택 기간 등을 따질 때 이혼, 재혼 등 개인 사생활까지 모두 공개해야 하는 탓에 청약자들의 반발과 민원이 늘어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부적격자 판명 기간이 길어지면 예비당첨자나 선착순 계약까지 걸리는 시간도 지연돼 하루빨리 계약을 끝내야 하는 건설사 입장에선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부적격자 처리 업무가 업체 편의에 따라 부실하게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부적격 판단 기준도 모호 = 가점제와 추첨제를 병행하면서 부적격자의 판단 기준도 애매모호하다.

만약 A씨가 가점제로 청약신청을 했다 점수가 미달해 떨어졌고 추첨제 청약자와 경쟁해서 추첨제 물량으로 당첨이 됐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알고보니 A씨가 가점제 점수를 실제 본인의 점수보다 높게 적어냈다면 그는 부적격자일까, 아닐까.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추첨제로 뽑힌 만큼 가점제 점수는 의미가 없으므로 당첨자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의견과, 부적격자 여부는 청약신청 당시의 조건이 판단 기준이 되므로 부적격자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건교부는 이에 대해 '전산상의 문제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최종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 '처벌 수위 낮춰달라' 주장도 = 현재 청약가점 입력과 관련한 모든 책임이 청약자 개인에게 돌아가도록 돼 있어 착오나 실수로 가점을 잘못 입력해 당첨되면 곧바로 당첨이 취소되고 5-10년간 재당첨이 금지되는 무거운 처벌이 뒤따른다.

건교부측은 "시행 초기 다소의 혼란은 예상되지만 다수의 청약자는 생각만큼 점수 계산이 복잡하지 않다"며 "부적격 당첨자를 구제해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제도가 처음 시행되는 만큼 처벌 수위를 낮춰줘야 한다는 의견도 고개를 들고 있다.

유엘알 박상언 대표는 "아파트 청약을 위해 몇 년씩 기다린 사람이 많은데 복잡한 제도 때문에 청약기회를 한순간에 잃게 되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며 "가점제 점수를 확실하게 계산해줄 수 있는 창구를 만들던가 부적격자의 처벌을 낮춰주는 방안도 모색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 "현장에서 보면 가점제에 대해 어렵다고 느끼는 청약자들이 의외로 많다"며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까지 적지않은 진통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sm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