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장은 기업의 유일神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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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가와 유키코 < 와세다대 교수·정치경제학 >
한국에 '시장'이란 마왕(魔王)이 찾아온 것은 10년 전인 외환위기 때였다.
산업보국의 기치 아래 대마불사(大馬不死) 경영에 매진해 온 재벌들은 한꺼번에 무너졌고 살아 남은 기업에는 '수익성'이 사업 규모를 대신하는 신(神)으로 변해 군림했다.
새로운 신은 '자본의 윤리'에 갇혔으며 반(反)기업 정서의 돌을 던지는 이에게 그것은 높은 철벽과 같았다.
그러나 마왕은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그 자체다.
사실 철벽은 새로운 신을 유일무이하게 숭배하는 한국 사회가 만든 것이 아닐까.
세계는 정말로 이 절대신 아래에 있는 것일까.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최근 몇 년에 걸쳐 발표한 세계 500대 기업 랭킹은 매우 흥미롭다.
수익성 성장성 안정성이란 재무 본질뿐 아니라 기업 통합,종업원과 이해관계자에 대한 배려,사회적 공헌,환경 대응 등 말하자면 기업의 사회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도 같은 비중으로 평가해 뭔가 다른 기업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2007년의 500대 기업 안엔 미국이 156사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는 일본이 115사,영국이 53사,프랑스 30사,독일 26사 순이었다.
북유럽과 스위스 호주 등 CSR 의식이 높은 나라의 건투도 눈에 띈다.
한편 한국 미디어가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미국 거대 기업은 재무 면(평균 40.5점)에서는 강하나 CSR의 평가(33.8점)에선 낮은 점수를 받았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3개국 평균(각각 34.5점과 44.2점)과 비교해 대조적이다.
재무 본질에서 500대 기업 중 유일하게 만점을 받은 미국의 구글은 종합 순위에선 219위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35.7점,41.5점)은 유럽형에 가까운 분포였지만 자동차 판매 세계 1위의 도요타는 종합 순위 111위에 그쳤다.
합병한 지 얼마 안 된 아스트라스제약(10위)과 CSR 순위 5위의 도시바(78위)보다 한참 뒤였다.
한국 기업을 보면 CSR 데이터가 존재하는 기업 중 포항제철이 30위로 가장 높게 랭크됐다.
또 삼성전자(141위)와 삼성SDI(213위)가 500위 안에 들었다.
이들 3사의 평균은 재무 면에서 44.7점,CSR에서 40.2점이었다.
재무 면에서는 미국 평균 이상이었지만 CSR에서는 일본과 유럽보다 못했다.
유동성 위기의 시대에는 수익성이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과잉 유동성이 문제가 되고,환경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사회책임투자(SRI·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를 필요로 하는 펀드가 급팽창하고 있다.
실제 SRI는 선진국에서 막대한 투자 성과를 올리고 있고,미국 기업도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CSR는 수익성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마왕의 새로운 얼굴이 됐다.
그러나 숫자로 단순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수익성과는 달리 CSR는 복잡한 측면을 갖고 있다.
그 실천과 달성의 상관 관계는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
진정한 가치관 공유가 필요한 것이다.
일본 기업의 CSR는 환경 경영으로 인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그 바닥에는 지독한 공해 경험과 '기업은 공동체'란 에도 시대로부터의 전통적 기업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아직까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기업 지배구조나 종업원의 다양성에서는 갈 길이 멀다.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한국의 대기업이라면 외환위기 이후 노력해 온 주주들에 대한 책임에 더해 종업원의 다양성과 사회적 공헌에도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CSR 평가를 높이는 길이다.
그러나 그 전제가 되는 것은 구시대형인 오너의 지시가 아니라,사내의 성숙한 노사 관계와 다양성을 허용할 수 있는 경영 체제다.
이런 점에서 CSR는 '산업보국'을 대신해 새로운 경영 이념을 요구하고 있다.
주주 경영자 종업원뿐 아니라 폭넓은 이해관계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신(新)이념이야말로 고객의 신뢰를 얻고 생산성을 높이고 철벽의 환상을 소멸시킬 수 있지 않을까.
선진 기업에는 수익성과는 다른 신이 존재한다.
한국 기업도 그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fukagawa@waseda.jp
한국에 '시장'이란 마왕(魔王)이 찾아온 것은 10년 전인 외환위기 때였다.
산업보국의 기치 아래 대마불사(大馬不死) 경영에 매진해 온 재벌들은 한꺼번에 무너졌고 살아 남은 기업에는 '수익성'이 사업 규모를 대신하는 신(神)으로 변해 군림했다.
새로운 신은 '자본의 윤리'에 갇혔으며 반(反)기업 정서의 돌을 던지는 이에게 그것은 높은 철벽과 같았다.
그러나 마왕은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그 자체다.
사실 철벽은 새로운 신을 유일무이하게 숭배하는 한국 사회가 만든 것이 아닐까.
세계는 정말로 이 절대신 아래에 있는 것일까.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최근 몇 년에 걸쳐 발표한 세계 500대 기업 랭킹은 매우 흥미롭다.
수익성 성장성 안정성이란 재무 본질뿐 아니라 기업 통합,종업원과 이해관계자에 대한 배려,사회적 공헌,환경 대응 등 말하자면 기업의 사회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도 같은 비중으로 평가해 뭔가 다른 기업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2007년의 500대 기업 안엔 미국이 156사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는 일본이 115사,영국이 53사,프랑스 30사,독일 26사 순이었다.
북유럽과 스위스 호주 등 CSR 의식이 높은 나라의 건투도 눈에 띈다.
한편 한국 미디어가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미국 거대 기업은 재무 면(평균 40.5점)에서는 강하나 CSR의 평가(33.8점)에선 낮은 점수를 받았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3개국 평균(각각 34.5점과 44.2점)과 비교해 대조적이다.
재무 본질에서 500대 기업 중 유일하게 만점을 받은 미국의 구글은 종합 순위에선 219위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35.7점,41.5점)은 유럽형에 가까운 분포였지만 자동차 판매 세계 1위의 도요타는 종합 순위 111위에 그쳤다.
합병한 지 얼마 안 된 아스트라스제약(10위)과 CSR 순위 5위의 도시바(78위)보다 한참 뒤였다.
한국 기업을 보면 CSR 데이터가 존재하는 기업 중 포항제철이 30위로 가장 높게 랭크됐다.
또 삼성전자(141위)와 삼성SDI(213위)가 500위 안에 들었다.
이들 3사의 평균은 재무 면에서 44.7점,CSR에서 40.2점이었다.
재무 면에서는 미국 평균 이상이었지만 CSR에서는 일본과 유럽보다 못했다.
유동성 위기의 시대에는 수익성이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과잉 유동성이 문제가 되고,환경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사회책임투자(SRI·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를 필요로 하는 펀드가 급팽창하고 있다.
실제 SRI는 선진국에서 막대한 투자 성과를 올리고 있고,미국 기업도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CSR는 수익성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마왕의 새로운 얼굴이 됐다.
그러나 숫자로 단순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수익성과는 달리 CSR는 복잡한 측면을 갖고 있다.
그 실천과 달성의 상관 관계는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
진정한 가치관 공유가 필요한 것이다.
일본 기업의 CSR는 환경 경영으로 인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그 바닥에는 지독한 공해 경험과 '기업은 공동체'란 에도 시대로부터의 전통적 기업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아직까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기업 지배구조나 종업원의 다양성에서는 갈 길이 멀다.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한국의 대기업이라면 외환위기 이후 노력해 온 주주들에 대한 책임에 더해 종업원의 다양성과 사회적 공헌에도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CSR 평가를 높이는 길이다.
그러나 그 전제가 되는 것은 구시대형인 오너의 지시가 아니라,사내의 성숙한 노사 관계와 다양성을 허용할 수 있는 경영 체제다.
이런 점에서 CSR는 '산업보국'을 대신해 새로운 경영 이념을 요구하고 있다.
주주 경영자 종업원뿐 아니라 폭넓은 이해관계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신(新)이념이야말로 고객의 신뢰를 얻고 생산성을 높이고 철벽의 환상을 소멸시킬 수 있지 않을까.
선진 기업에는 수익성과는 다른 신이 존재한다.
한국 기업도 그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fukagawa@waseda.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