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21일 평양을 전격 방문함에 따라 북·미 간 관계 정상화에 전기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북·미 관계 회복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최대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6자회담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힐 차관보는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자격으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 2·13합의(영변 핵시설 폐쇄·봉인) 이행을 촉구할 것"이라며 "비핵화 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방편으로 북·미 관계 개선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은 이날 "부시 행정부가 힐 차관보에게 북한 보유 핵장비를 (미국이)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북측에 제안할 수 있도록 할지 검토 중"이라고 보도해 힐 차관보가 이번 방북 때 이를 북한에 제안할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 만회하겠다"

힐 차관보는 이날 군용기편으로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고 6자회담을 진전시키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비핵화를 진전시키는 조건으로 미국에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중단을 요구하고 있으며,힐 차관보에게 이 같은 원칙을 다시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다자의 경제 지원보다 미국과의 양자 관계 개선을 통한 교역 및 금융거래 정상화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힐 차관보는 북한 외교 총책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만날 가능성이 있지만 대통령 특사가 아니기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될지는 불투명하다.

◆북·미,관계 개선 결단


미국 고위 관리의 방북은 2차 핵위기를 촉발시켰던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특사 이후 근 5년 만이다.

힐 차관보의 이번 방북은 압박과 무시로 특징화됐던 미국 부시 정부의 대북 정책이 전면 수정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강하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북한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최고위층에서 관계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전략적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6자회담 재가동 가속도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이날 양제츠 외교부장이 다음 달 2~4일 핵폐기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양 부장은 북측과 6자회담 재개 일정을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 평화포럼에 참석 중인 천영우 우리 측 6자회담 대표는 "공식 6자회담이 개최되려면 비공식 회담이 7월10일 이전에 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6자회담은 지난 3월 수석대표 회의 도중 휴회됐다.

6개국 수석대표가 비공식 회동을 갖는 방식으로 회담을 재개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다시 본궤도에 올라섬에 따라 우리 정부의 대북 쌀 지원은 늦어도 내달 중순에 재개될 전망이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