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서울 구로구 궁동의 밭(田) 100여평을 사들인 A씨(여·76).매입하자마자 그 땅은 도로 예정부지로 들어갔다.

하지만 33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로는 건설되지 않았다.

예산 부족이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A씨는 자신의 땅을 30년 넘게 사용하지도 매각하지도 못하는 처지인 셈이다.

A씨는 그동안 구로구,서울시,국가고충처리위원회 등 관계기관에 셀 수도 없이 많은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한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결국 최근 구로구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처럼 10년 이상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과 관련한 땅주인들의 민원이 쏟아지고 있지만 서울시는 최근 대부분의 시설에 대해 도시계획을 당장 해제할 수 없다는 방침을 세웠다.

공시지가 기준 5조원(실거래가 기준 약 7조5000억원)에 달하는 보상가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탓이다.

서울시는 대신 2020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보상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서울시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땅주인들은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한 억울함을 해소해주기는커녕 앞으로 14년을 더 기다리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7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가 서울시립대 도시정보연구소에 의뢰해 작년 3월부터 진행한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재정비계획' 용역이 최근 마무리돼 그 결과를 통보받았다.

서울시는 이 같은 용역 결과를 토대로 △보상기간을 2020년까지로 최대한 늘리고 △기반시설부담금 가운데 일부를 보상비용으로 책정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로 공원 학교 등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돼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용도로 사용 중이거나 사유지를 무단 점유하고 있는 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이 2029곳(94.7㎢)으로 조사됐다"며 "(보상기간을 2020년까지로 늘리는 방법을 통해) 사실상 이들 시설 대부분을 현상 유지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은 전국적으로 1387㎢이며 이 중 10년 이상 장기 미집행 시설이 1038㎢에 달한다.

이 관계자는 또 "용역 결과 미집행 시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도로의 경우 사유지에 해당하지만 실제 도로로 이용되는 곳도 상당수 있었다"며 "이 경우 공익적인 측면을 감안할 때 현재 사용하고 있는 용도를 다른 쪽으로 바꾸는 것도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김갑룡 서울시의회 재경위원장은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문제를 해결하려면 재정 여건이 열악한 자치구보다는 서울시 차원에서 충분한 재원을 마련해 보상에 나서야 한다"며 "장기 미집행 시설이 대부분 1996년 지방자치 시대 이전에 결정된 만큼 서울시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쓸데없는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보상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신도시 개발뿐 아니라 구도심 개발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등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문제를 적극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은 정부가 지정한 뒤 10년 이상 계획대로 개발하지 않은 시설들로 1999년 헌법재판소로부터 관련 법률이 재산권 보장에 위반된다는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았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