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가 반환안하면 국가가 배상해야"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9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1962년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 부산지부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승인에 따라 강제 헌납토록 한 것이라는 내용의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중정의 수사권은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범죄에만 한정돼 있는데 이와 상관없는 김지태를 구속수사한 것은 권한남용에 해당된다"며 "구속재판을 받고 있어 궁박한 처지에 있는 김씨에게 부일장학회 기본재산 토지 10여만평과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등 언론 3사를 국가에 헌납할 것을 강요한 것은 개인의 의사결정권 및 재산침해 행위"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특히 언론3사를 헌납하게 한 것은 언론기관의 존립근거인 공공성과 중립성 등 언론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는 "김지태가 강압에 의해 헌납한 재산은 국가의 공식적 절차를 밟지 않고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지시에 따라 1962년 7월14일 5.16장학회의 기본재산으로 출연됐고, 헌납재산의 소유명의는 국유재산법 등이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5.16장학회로 이전됐다"며 "5.16장학회의 명칭만 변경된 정수장학회는 헌납주식을 국가에 원상회복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결정했다.

위원회는 "국가는 수사권이 없는 중정의 강요에 의해 발생한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부일장학회의 재산권 및 김지태의 재산권을 침해한 점을 사과하고 재산을 반환하는 한편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화해를 위한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김지태가 헌납한 토지는 부일장학회에 반환하고, 반환이 어려울 경우 손해를 배상하라"며 "부일장학회가 이미 해체됐기 때문에 공익목적의 재단법인을 설립해 그 재단에 돌려주는게 좋겠다"고 밝혔다.

또 "헌납한 주식도 돌려줘야 하는데 정수장학회가 이 주식을 국가에 반환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김지태씨 유족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며 "정수장학회가 특정집단이나 개인에 의해 운영되고 언론사 주식을 정수재단의 경비조달 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공익성에 반하기 때문에 국가는 이를 시정하는 조치도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실화해위가 이번 결정을 2007년 상반기 보고서에 담아 오는 8월 대통령에게 제출하면 국가는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 기본법 34조에 따라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진실화해위의 재산반납 권고를 어느 정도 수용할지는 모르기 때문에 조치가 미흡할 경우 김지태씨 유족은 결정문을 토대로 국가에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을 제기할 수 있다고 위원회는 전했다.

송기인 진실화해위원장은 "정치적인 것을 고려하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건이 제한된다.

우리는 진실을 밝혔을 뿐인데 언론 등에서 예민한 반응을 보여 당황스럽다"라며 "진실은 감출 수 없다는 것이 원칙이고, 부일장학회 사건도 이 원칙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故)김지태씨의 차남 영우(65)씨는 지난해 1월27일 "1962년 박정희 정권이 아버지를 국내재산도피방지법 위반 등 9개 혐의로 구속한 뒤 처벌을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부일장학회와 아버지 소유의 땅 10만평, 부산일보 등 언론 3사를 강제로 헌납시켰다"며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는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에 대해 작년 12월5일 조사개시 결정을 내리고, 지난달 3일과 17일, 이달 15일, 29일 등 4차례나 전원위원회에 상정한 끝에 의견조율을 거쳐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앞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005년 7월 "부일장학회 등은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지시로 중정의 강압에 의해 헌납됐다.

김씨가 구속상태에서 작성한 기부승낙서 등도 위조됐다"고 발표해 정수장학회 재산의 사회환원 문제 등이 한동안 불거졌지만 지금껏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진실화해위는 국정원 발표와 관련해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사전 승인은 있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시한 부분을 입증할 자료는 찾지 못했다"라며 "5.16 장학회가 정수장학회로 명칭을 바꾸고 공익목적에 반하게 운영되고 있는 부분을 우리 위원회가 새롭게 지적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언론3사의 경영권이 5.16장학회로 이전되면서 장학회 이사들이 부산일보 사장, 한국문화방송 사장을 역임하고, 문화방송과 부산일보가 매년 각각 20억원, 8억원의 기부금을 정수장학회에 내고 있다"며 "언론3사는 공익목적을 위해 헌납됐기 때문에 영리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noano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