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은 올해 ‘밀양’을 선보이기 전 이미 단 3편의 작품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 반열에 이름을 올랐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등은 모두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떡여지는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동시에 관객들과의 소통에서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그의 네 번째 작품 ‘밀양’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게 되면서 충무로를 넘어 전세계가 주목하는 명감독으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또 현정부의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 시절 훼손됐던 ‘영화감독 이창동’으로의 이미지도 확실히 회복할 수 있게 됐다.

언론개혁 등을 주도하며 보수언론과의 껄끄러운 관계로 구설수에 올랐던 그는 ‘밀양’으로 건재함을 확실히 입증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충무로를 떠난 외도(?)로 지난 4년 동안 새 작품을 발표하지 못한 것이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 감독은 경북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81년부터 86년까지 영양고등학교와 신일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93년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싶다’ 시나리오 작가와 조감독으로 충무로에 첫 발을 내디뎠다.

감독으로서 데뷰작인 97년작 ‘초록물고기’는 단번에 그의 이름을 한국 영화계에 각인시켰다.

영화배우 한석규의 출세작이기도 한 이 작품으로 이 감독은 그해 제33회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신인감독상·각본상과 제35회 대종상영화제 각본상,제18회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받는다.

두 번째 작품이자 설경구라는 또다른 걸출한 스타를 탄생시킨 2000년작 ‘박하사탕’은 제37회 대종상영화제 감독상·각본상을 안겨준다.

세 번째 ‘오아시스’(2002년)는 ‘이창동’이라는 이름을 전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작품.이 영화로 이 감독은 제59회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의 영예를 안는다.

그의 작품들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개발에 소외된 이들의 일그러진 삶을 보여준 ‘초록물고기’,5·18민주화 항쟁이 한 개인에 남긴 상처를 보여준 ‘박하사탕’,장애인들의 인정받지 못한 사랑을 그린 ‘오아시스’ 등이 모두 그랬다.

그러나 현실의 비극을 가감없이 보여주면서도 그의 영화는 최종적으로 인간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극한 상황에 처해졌을 때 인간이 보이는 절망과 슬픔,그리고 어딘가 있을지 모를 구원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밀양’ 역시 아이까지 잃고 더이상 살아갈 의욕을 잃은 신애(전도연)의 주위를 어쩌면 한줄기 ‘햇살’(희망)일지 모르는 종찬(송강호)이 맴도는 구조다.

또다른 면모로 이창동 감독은 작품 연출외에 영화산업 전반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진 ‘현실 참여형’ 감독이기도 하다.

2000년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정책위원장을 시작으로 2001년 영화인회의 정책위원장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를 맡았다.

앞서 설명한 것 처럼 2003년2월 참여정부의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이 되면서 언론개혁 등을 주도해 각종 이슈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가 충무로로 돌아와 4년만에 선보인 ‘밀양’은 ‘오아시스‘를 마친 2002년말부터 줄곳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던 작품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감독은 첫 시사회에서 ‘밀양’이라는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이 아닌 인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신애도 신을 스스로 해석하고,의지했고 또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것 뿐이죠.어찌됐건 삶의 희망과 구원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해답은 관객들 스스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