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경기가 크게 위축된 지방권은 물론 수도권의 아파트 용지까지 대거 매물로 쏟아지는 것은 부동산 개발업체(시행사)들의 상황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들 업체는 집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데다 오는 9월 민간택지 아파트까지 분양가상한제가 확대되면 채산성이 없어 차라리 아파트 사업에서 손을 떼기 위해 '택지 세일'에 속속 나서고 있지만 정작 땅을 사겠다는 건설사가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개발업체들이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며 "이런 추세라면 올 하반기부터 현재 개발업체의 절반 이상이 빚더미에 올라앉아 주택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또 이들 개발업체의 부도는 민간주택 공급 감축으로 이어지면서 모처럼 안정세가 지속되고 있는 집값을 다시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최근 5~6년 동안의 신규 주택은 대부분 개발업체들이 조성한 택지를 통해 공급돼 왔기 때문이다.

아울러 개발업체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의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초까지만 해도 대부분 개발업체들은 "분양가상한제를 피할 수 있는 올 9월 이전에 아파트를 분양하겠다"며 시공사를 물색했지만,최근에는 상당수 업체가 '부지 매각'으로 급선회하고 있다는 게 주택업계의 분석이다.

아파트 사업 자체를 포기하겠다는 극약 처방을 내리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는 얘기다.

수도권에서 인기 지역으로 꼽히는 수원 용인 화성 남양주 등에서까지 택지 매물이 늘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형 건설업체는 물론 중견 건설사들에도 수도권에 있는 택지를 사달라는 요청이 거의 매일같이 들어오는 실정이다.

A사 관계자는 "지방은 150억∼200억원,수도권은 400억∼500억원 정도 하는 택지 매물이 많다"며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 돌면 이른바 '가격 후려치기' 등으로 땅값이 크게 깎이게 마련인데도 개의치 않고 사달라는 업체들이 상당수"라고 밝혔다.

B건설 관계자는 "분양가상한제가 올 9월부터 시행되는 것이 확정되면서 사업을 접고 땅을 내놓는 개발업체들이 늘어 '제발 우리 땅을 사달라'며 읍소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자금 여력이 많은 대형 건설업체들조차 택지 매입 요청을 거절하는 데 진땀을 빼고 있다.

집값 하락세가 이어져 수요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분양률을 높이려면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훨씬 싸게 책정해야 하지만 매물 중 상당수는 1~2년 전 택지 확보 출혈 경쟁 탓에 땅값 자체가 비싼 데다 연 15~20%에 이르는 이자 부담까지 고려해야 돼 채산성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개발업체들은 대부분 저축은행 등에서 높은 금리로 자금을 대출받아 택지 매입비를 치른 상태여서 아파트 분양이 늦어질수록 이자 부담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건설업체들이 올 들어 택지 수주·매입 심의 기준을 대폭 강화해 목 좋은 곳에 인·허가까지 받아놓은 땅조차도 보수적으로 심사하고 있는 상태다.

C사 관계자는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는 올 9월 이후 사업에 대해서는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무턱대고 택지를 매입했다간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며 "이런 이유 때문에 낯선 개발업체가 들고 오는 매물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올 9월 이후에는 이 같은 택지 매물이 급증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되면 분양가상한제로 분양가를 함부로 높일 수 없는 상황에서 비싼 이자를 주고 땅 매입 자금을 대출받은 개발업체들이 대거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대한주택건설협회에 따르면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8년 이후 매년 급증해 지난해 말 7038개에 달했던 주택사업 등록업체 수는 지난달 말 현재 7015개로 줄어 9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분양가상한제가 실시되는 올 9월 이전에 아파트를 분양하지 못하는 개발업체는 절망적인 상황에 내몰릴 것"이라며 "하반기부터는 땅 매물이 더 늘어나면서 개발업체들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강황식/서욱진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