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은행권 영토 확장 전쟁에서 승리한 `검투사'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이 3년간 입었던 두 겹의 갑옷을 한꺼번에 벗는다.

황 행장은 금융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을 도맡아 기록적인 실적을 올렸고 은행권에 숱한 화제도 낳았지만 영광의 상처만을 간직한 채 은행권 최초로 두 번의 퇴임식을 치르게 됐다.

◇ 화려한 실적..초라한 보상

황영기 행장은 3년간 우리금융지주의 총자산을 103조9천억원이나 늘리며 금융업계 3위였던 우리금융을 국내 최대 금융그룹으로 도약시켰다.

영역 확장 와중에도 3년 연속 1조원 이상의 당기 순이익을 올리는 등 수익성과 건전성도 높게 유지하며 금융업계 최고의 CEO(최고경영자)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취임 당시 8천850원이었던 우리금융의 주가는 지난 23일 현재 2만3천800원으로 뛰어 오르며 공적자금 잔액 10조9천억원을 모두 회수할 수 있는 수준인 1만7천320원을 크게 웃돌고 있다.

시가총액은 2003년 말 5조3천억원에서 작년 말 17조8천억원으로 236.8%나 급증하며 같은 기간 은행업 지수 증가율 88.6%나 최대은행인 국민은행의 시가총액 증가율 67.8%를 앞섰다.

그러나 화려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공적자금투입 금융기관이라는 굴레가 씌워진 우리금융의 수장에게 돌아간 보상은 초라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 183억원,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 138억원, 신상훈 신한은행장 95억원,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28억원, 김종열 하나은행장 17억원 등 경쟁은행 수장들이 모두 대규모 스톡옵션 평가차익을 누리고 있지만 황 행장은 단 한푼 어치의 스톡옵션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작년 직원들을 독려하기 위해 성과급을 앞당겨 줬다가 자신의 연봉이 1억3천만원 삭감되는 `수난'까지 겪었다.

◇ 황영기 어록 화제..경쟁은행.대주주와 마찰도

황 행장은 은행권에 무수한 화제를 뿌린 이슈 메이커였다.

2005년 말 토종은행론을 제시하며 외국인 지분이 많은 시중은행들과 설전을 벌여 금융감독 당국이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고 맏형론을 거론하며 직원들의 책임감을 북돋우기도 했다.

`솔개 정신' `장산곶매' `몽골 기마병' 등 검투사다운 용어를 즐겨 쓴 황 행장은 `우리은행이 진정한 2등' `인수.합병 없이도 외환은행 만한 은행을 일궈냈다'는 등의 발언으로 타행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으며 우리은행 행명에 대한 경쟁 은행의 문제 제기에는 `우리 등에 칼을 대면 우리도 뒤통수를 치겠다'는 공격적인 표현으로 맞대응하기도 했다.

특히 행장 인사권과 스톡옵션, LG카드 인수전 참여, 경영개선약정(MOU) 해제 등과 관련해 직설적인 표현으로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에 불만을 표시한 점은 징계와 연임 실패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은행권은 황 행장이 너무 튄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강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마지막 월례조회에서 `님만이 님이 아니라 기룬(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란 시(詩) 문구나 "어디에 가든지 주인이 되고 무슨 일을 하든 지 프로가 돼야 한다"란 뜻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을 남긴 것처럼 우리은행에 대한 애정과 정상 탈환 의지가 그만큼 강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직원들은 황 행장이 직원들을 위하다가 희생된 것을 매우 안타까워 한다"며 "사심없이 우리은행에 헌신한 그야말로 우리은행의 `님'이었다"고 말했다.

황 행장은 26일 우리은행 주총 이후 은행장에서, 30일 우리금융 주총 이후 회장에서 각각 퇴임한다.

(서울연합뉴스) 최현석 기자 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