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뉴스전문 채널 CNN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종군 위안부 발언 파동과 관련, 즉석 인터넷 여론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일본이 또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전체의 74%나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CNN은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다시 사과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지난 4일 이후 "일본이 또 사과를 해야 하느냐"는 물음으로 여론 조사를 실시중이며, 7일 오전 10시(현지시간) 현재 반대 61만여표, 찬성 21만8천여표로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러한 투표 결과는 최근 뉴욕 타임스 등 미국의 유력 언론들이 아베 총리의 발언을 비판하며 종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법적, 도덕적 책무를 추궁한 것과는 정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CNN은 즉석 여론투표가 과학적이지 않으며, 단지 투표에 참가한 인터넷 사용자들의 의견만을 반영하는 것이며, 전체 인터넷 이용자들이나 일반 여론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석을 달았다.

그러나 이번 CNN의 즉석 여론조사에는 과거 일제 만행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젊은 미국인 인터넷 이용자들이 대거 참여했을 개연성이 커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주미 한국 대사관의 윤석중 홍보 공사는 "종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일제의 만행을 잘 모르는 대다수 미국민들은 '한국-일본간의 문제에 왜 미국이 개입하느냐'는 식의 생각을 갖는 반면, 이 문제를 잘 아는 미국의 식자층은 일본의 사과 및 배상 책임을 절실히 강조하는 등 양극단의 인식차가 존재한다"면서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CNN이 왜 즉석 여론조사를 실시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CNN이 아베 총리 발언을 계기로 미국에서도 종군 위안부 문제가 부각되자 별 생각 없이 여론 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CNN이 제대로 이 문제를 살펴 보려 했다면 한-일간 문제에 정통한 미국의 전문가들을 상대로 여론 조사를 실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 하원이 추진중인 종군 위안부 결의안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CNN의 질문 형식을 문제 삼았다.

그는 "일본은 그간 한번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 등에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으며, 이번 결의안은 이번에야 말로 진짜 제대로 사과를 하라는 것인데도 아베 총리는 마치 과거에 했는데 또 하느냐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면서 "CNN은 종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상세한 배경 설명 없이 '일본이 또 사과할 필요가 있느냐'는 식의 질문으로 마치 제3국인 미국민의 입장에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 식의 대답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CNN과 달리 위안부 문제를 다룬 미국의 주요 일간지들 가운데 일본편을 들고 있는 사례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날 뉴욕 타임스는 일본에 위안부 문제에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사설을 실었으며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조지 워싱턴대 다이나 쉘턴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도덕적, 법적 의무를 강조한 바 있다.

특히 평소 일본을 호의적인 시각에서 평가해왔던 스탠퍼드대 쇼렌스타인 아시아태평양연구소의 마크 피어티 방문 교수 조차도 전날 일간 새너제이 머큐리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주 멍청한 아베 발언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면서 "그러한 발언은 마치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었다.

(워싱턴연합뉴스) 박노황 특파원 nhpark@yna.co.kr